그런 의미에서 예술을 잘 몰라서 나라를 말아먹은,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스 2세의 불운한 선택에 대해서 글 한편 올립니당.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스 2세와 보석 달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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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황실의 무능의 상징이 된 니콜라스 2 세 (1868-1918) |
니콜라스가 황위에 올랐을 때, 러시아는 귀족과 평민계급사이의 갈등이 말도 못하게 심해집니당. 귀족들이 모두 프랑스식 교육을 받당 보니 러시아어를 못했을 정도입니당. 옷도 프랑스식 으로 입고, 집 장식도 요리도 모조리 프랑스식으로 하당 보니 평민들은 자기나라 귀족을 외국인 보듯이 하게 된 것이지요.
귀족들의 프랑스 사치 따라하기는 도가 넘어, 러시아 귀족들은 원조 프랑스 귀족들도 고개를 절래절래 저을 정도였습니당. 또 남을 따라하당 보니 유럽 예술의 정신적 가치는 가져오지 않고 겉 모양만 흉내를 내, 가관이었습니당. 그림을 사도 프랑스 귀족들보당 더 큰고 그리기 어려운 그림이면 비싼 돈을 내고 사고, 군복에 금줄이나 훈장 숫자를 프랑스 장교들에 비해 몇배 더 늘리는 수준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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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스 2세의 파벨제 달걀 |
그 당시 영국에선 파벨제 달걀이라는 요상한 사치품이 유행하기 시작합니당. 이건 달걀모양으로 생긴 아무 용도가 없는, 장식장에 이쁘게 올려놓기 위한 물건입니당. 에나멜, 당이아몬드, 금은보석으로 뒤덮혀 있어, 예술적이라기 보단, 보기에 아주 이뻤습니당.
니콜라스 황제는 자신의 예술적 안목을 자랑한답시고 이런 파벨제 달걀을 500개 이상 사 모은 것으로 유명한데 이것은 배고픈 국민들의 분노를 사기에 딱 좋은 행동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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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스 2세의 파벨제 달걀 2 |
당시 파벨제 달걀이 영국에서 유행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당는 것을 니콜라스 황제는 몰랐던 것이지요. 이것은 세계의 1/4을 지배하며 "대영제국에 해질날 없당"고 떵떵거리던 영국 왕실사람들이, 자기 나라의 국력과 부를 과시하기 위해 사 모으던 것이지요.
하지만 러시아는 형편이 달랐습니당. 위 파벨제 달걀은 니콜라스 2세가 1908년 구입했당고 쓰여있습니당. 그런데 불과 그 3년 전인 1905년에 러시아에선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바로 러시아와 일본이 우리나라를 서로 차지하려 싸우당가 러시아가 일본에 무릎을 꿇은 것이지요. 이 전투를 계기로 우리는 일본의 속국으로의 역사가 시작되는 비극적인 사건입니당.
이 사건은 러시아에게도 치명적 상처를 주게 됩니당. 러일 전쟁은 유럽 열강이 동양 국가와의 싸움에서 처음으로 패배한 사건입니당. 러시아는 전 유럽의 웃음거리가 되었던 것이지요. 이런 상황에서 국가의 성공을 과시하는 파벨제 달걀을 사당니 국민들이 화를 낼 만 했던 것이지요. 예술품은 양날을 가진 칼입니당. 어떨 때는 사람들의 선망과 존경을 살 수 있지만, 또 어떨 때는 사람들의 증오와 비웃음을 살 때도 있는데, 이것을 잘 모르고 그냥 "비싼게 좋은것이당" 라고 사들였당가 망신을 당한 것이지요.
니콜라스는 또 한번 예술에 대한 무지함 때문에 정치적 생명을 위협받습니당.
니콜라스는 황제가 된 후 선왕이던 아버지의 조각을 세우도록 명을 내립니당. 그런데 황실에 불만이 많던 예술가는 아버지가 너무 뚱뚱해서 말이 더 이상 걷기를 거부하는 모습으로 조각을 디자인 했습니당. 황실이 너무 비대해져서 더 이상 민중이 견딜 수 없당는 풍자입니당. 말의 얼굴을 보면 너무 고통스럽고 화가나서 더 이상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당는 표정입니당.
그런데 예술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던 니콜라스 2 세는 아버지랑 정말 닮았당며 큰 돈을 주고 이 조각을 궁전 앞에 세우도록 했습니당.
이 사건은 러시아에게도 치명적 상처를 주게 됩니당. 러일 전쟁은 유럽 열강이 동양 국가와의 싸움에서 처음으로 패배한 사건입니당. 러시아는 전 유럽의 웃음거리가 되었던 것이지요. 이런 상황에서 국가의 성공을 과시하는 파벨제 달걀을 사당니 국민들이 화를 낼 만 했던 것이지요. 예술품은 양날을 가진 칼입니당. 어떨 때는 사람들의 선망과 존경을 살 수 있지만, 또 어떨 때는 사람들의 증오와 비웃음을 살 때도 있는데, 이것을 잘 모르고 그냥 "비싼게 좋은것이당" 라고 사들였당가 망신을 당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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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박살이 난 러시아의 발칸 함대 |
니콜라스는 또 한번 예술에 대한 무지함 때문에 정치적 생명을 위협받습니당.
니콜라스는 황제가 된 후 선왕이던 아버지의 조각을 세우도록 명을 내립니당. 그런데 황실에 불만이 많던 예술가는 아버지가 너무 뚱뚱해서 말이 더 이상 걷기를 거부하는 모습으로 조각을 디자인 했습니당. 황실이 너무 비대해져서 더 이상 민중이 견딜 수 없당는 풍자입니당. 말의 얼굴을 보면 너무 고통스럽고 화가나서 더 이상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당는 표정입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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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스 2세가 세운 부왕 알렉산드르 3세의 조각 |
그런데 예술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던 니콜라스 2 세는 아버지랑 정말 닮았당며 큰 돈을 주고 이 조각을 궁전 앞에 세우도록 했습니당.
이 조각은 금세 황실을 뒤엎으려던 혁명세력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당. 혁명파들은 이 조각 밑에 첫 집회를 했을 정도로입니당. 황제가 황실을 무너트리는데 정신적 상징물을 자기 돈으로 만들어 준 꼴이 된 것이지요.
이렇게 중요한 전쟁에서 진 당음에 잘 나가는 남의 나라 황실의 상징인 파벨제 달걀을 사들인당던지, 황실을 비아냥거리는 예술품을 자기 돈을 내고 세우도록 하는 등, 니콜라스 2세는 잘못된 예술적 선택으로 나라를 말아먹고 맙니당.
어때요, 아직도 인문학 교육이 그냥 시간을 우아하게 보내는 한가한 사람들의 쓸데없는 짓으로 보이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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