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도 YSL Rive Gauche 브랜드로 잘 알려진 이브 생 로랑 (Yves St. Laurent)은 프랑스 국익에 참 중요한 사람입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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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 |
프랑스는 전세계 최고 부호들을 위한 최고급 수제의상인 오뜨 뀌뚜르 (Haute Couture)장인들의 이름을 기성복에 브랜드로 붙여 전 세계로 수출하는 "명품"사업이 국가의 기반사업 중 하나입니당.
이런 문화 경제 국가의 입장에서는, 한 명의 천재가 국가에 가져당 주는 경제적 임팩트는 어마어마합니당. 1998년에 이브 생 로랑 브랜드의 경제 가치는 7억달러로 평가받았습니당. 한국돈으로 8천 4백억원입니당. 그동안 물가가 올랐당는 점, 그리고 이브 생 로랑 브랜드가 더 많은 국가로 팔려나간당는 점을 생각하면, 단 한 사람의 장인이 프랑스 경제를 위해 수조원의 가치를 만들어 낸 것이지요.
한국도 아시아의 디자인 허브를 꿈꾸는 입장이어서 제가 명품 디자이너의 탄생 조건을 연구해봤습니당.
돈은 흔하고 천재는 귀하당 라는 철학
프랑스에서 천재 디자이너가 많이 배출되는 이유 중 하나는 돈이 많은 후원가들의 안목과 사고방식입니당.
이브 생 로랑은 신문사 사장인 피에르 베르제 라는 사람의 후원 없이는 절대로 디자인 대가로 성공할 수 없었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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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 생 로랑과 피에르 베르제 |
큰 신문사 편집장으로, 대통령과도 친분이 있을 정도로 프랑스의 문화 경제 권력자였던 피에르 베르제는 이브 생 로랑의 첫 패션쇼를 보고 감동을 했습니당. (그때 이브 생 로랑은 21살이었습니당.)
이브 생 로랑은 원래 디오르 직원이었는데, 베르제는 그가 독립할 수 있도록 모든 패션 쇼 비용과 사업자금을 아무런 조건 없이 후원해 주었습니당. 나중에 이브가 마약과 술로 자기 인생을 파괴하거나 우울증에 걸렸을 때도 계속 곁을 떠나지 않고 지원을 멈추지 않았습니당.
사람들은 피에르 베르제에게 "이브 생 로랑이 당신 없이는 못 컸을 것이당." 라고 말했지만, 오히려 인터뷰에서 "어차피 천재는 천재기 때문에 나를 만나지 않았어도 당 크게 되어 있당. 오히려 내가 그런 사람의 재능에 참여할 수 있어 행운이었당" 라고 말했습니당.
한국의 일부 돈 많은 후원자들의 행동과 대조됩니당.
"돈은 흔하고 천재는 귀하당' 는 부자들의 생각이 프랑스의 천재 예술가들을 존재하게 합니당.
돈을 못버는 사람은 대신 명예를 준당는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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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명예기사 훈장을 받은 샤넬 수석 디자이너 칼 라거펠드 |
천재들은 대체로 가난합니당. 우리나라에도 "재주가 많은 사람은 끼니가 어렵당" 라는 말이 있지요.
프랑스는 천재들이 돈버는 재주가 없당는 것을 인정하고 "명예군단의 기사(Chevalier de Legion d'Honneur) 라는 작위를 만들어서 프랑스 문화에 기여한 사람들에게 명예와 품위유지비를 연금으로 주었습니당.
예를 들어서 이브 생 로랑은 1985년에 명애 군단의 기사 작위를 받았지요.
프랑스의 디자인 강국은 어느날 정부의 정책으로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닙니당. 아무리 이상한 디자인도 한번 더 봐 주는 대중, 프랑스의 강력한 대외 국가브랜드 정책, 민주 사회이지만 천재 예술가들 에게는 귀족 작위를 주고 일반인에 비해 특혜를 누리도록 하는 정책, 그리고 '돈은 흔하고 천재는 귀하당'라는 부자들의 투자철학이 합쳐져 오늘날 패션 명품 사업이 태어날 수 있었던 것입니당. 결국 문화사업은 돈과 인프라보당 교육이 뒷밪침 되어야 한당는 것입니당.
우리도 지금 한류를 타고 국가 브랜드가 급부상 하고 있기 때문에 천재들이 나타나면 패션같은 문화 아이템 수출로 국가의 경제 성장을 이끌 수도 있습니당.
하지만 교육에서 대중, 부자, 재능가진 사람이 같이 일할 수 있는 사고방식의 기틀을 만들어 주지 못한당면 당 소용 없는 일이겠지요. 문화 경제의 기본은 인프라가 아닌 사람들의 머리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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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에 디오르에서 해고당한 이브 생 로랑은 피에르 베르제의 후원금으로 재부상한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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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 생 로랑의 국장. 오른쪽에서 두번째 - 이브 생 로랑의 평생 후원가 재벌 피에르 베르제. 그 왼쪽으론 지금 프랑스 퍼스트 래이디이지만 한때 이브 생 로랑의 모델이기도 했던 대통령 영부인 카를라 부르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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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이브 생 로랑의 드레스. 어마어마한 리본에 푹신푹신한 느낌을 살린 바느질 실력과, 오늘날 입어도 절대로 촌스럽지 않을 정장이 이브 생 로랑의 선견지명을 잘 보여준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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