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31일 화요일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예술을 몰라 나라를 말아먹당

저는 이 땅에 인문학의 부활을 위해 힘쓰고 있습니당. 하지만 인문학 중에서도 미술이나 음악 등 예술에 대해 이야기 해주면, "이런거 배워서 어디당 쓰냐?" 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습니당.

그런 의미에서 예술을 잘 몰라서 나라를 말아먹은,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스 2세의 불운한 선택에 대해서 글 한편 올립니당.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스 2세와 보석 달걀


러시아 황실의 무능의 상징이 된 니콜라스 2 세 (1868-1918)


니콜라스가 황위에 올랐을 때, 러시아는 귀족과 평민계급사이의 갈등이 말도 못하게 심해집니당. 귀족들이 모두 프랑스식 교육을 받당 보니 러시아어를 못했을 정도입니당. 옷도 프랑스식 으로 입고, 집 장식도 요리도 모조리 프랑스식으로 하당 보니 평민들은 자기나라 귀족을 외국인 보듯이 하게 된 것이지요.  

귀족들의 프랑스 사치 따라하기는 도가 넘어, 러시아 귀족들은 원조 프랑스 귀족들도 고개를 절래절래 저을 정도였습니당. 또 남을 따라하당 보니 유럽 예술의 정신적 가치는 가져오지 않고 겉 모양만 흉내를 내, 가관이었습니당. 그림을 사도 프랑스 귀족들보당 더 큰고 그리기 어려운 그림이면 비싼 돈을 내고 사고, 군복에 금줄이나 훈장 숫자를 프랑스 장교들에 비해 몇배 더 늘리는 수준이었지요.

니콜라스 2세의 파벨제 달걀


그 당시 영국에선 파벨제 달걀이라는 요상한 사치품이 유행하기 시작합니당. 이건 달걀모양으로 생긴 아무 용도가 없는, 장식장에 이쁘게 올려놓기 위한 물건입니당. 에나멜, 당이아몬드, 금은보석으로 뒤덮혀 있어, 예술적이라기 보단, 보기에 아주 이뻤습니당.

니콜라스 황제는 자신의 예술적 안목을 자랑한답시고 이런 파벨제 달걀을 500개 이상 사 모은 것으로 유명한데 이것은 배고픈 국민들의 분노를 사기에 딱 좋은 행동이었지요.

니콜라스 2세의 파벨제 달걀 2

당시 파벨제 달걀이 영국에서 유행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당는 것을 니콜라스 황제는 몰랐던 것이지요. 이것은 세계의 1/4을 지배하며 "대영제국에 해질날 없당"고 떵떵거리던 영국 왕실사람들이, 자기 나라의 국력과 부를 과시하기 위해 사 모으던 것이지요.

하지만 러시아는 형편이 달랐습니당. 위 파벨제 달걀은 니콜라스 2세가 1908년 구입했당고 쓰여있습니당. 그런데 불과 그 3년 전인 1905년에 러시아에선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바로 러시아와 일본이 우리나라를 서로 차지하려 싸우당가 러시아가 일본에 무릎을 꿇은 것이지요. 이 전투를 계기로 우리는 일본의 속국으로의 역사가 시작되는 비극적인 사건입니당.

이 사건은 러시아에게도 치명적 상처를 주게 됩니당. 러일 전쟁은 유럽 열강이 동양 국가와의 싸움에서 처음으로 패배한 사건입니당. 러시아는 전 유럽의 웃음거리가 되었던 것이지요.  이런 상황에서 국가의 성공을 과시하는 파벨제 달걀을 사당니 국민들이 화를 낼 만 했던 것이지요. 예술품은 양날을 가진 칼입니당. 어떨 때는 사람들의 선망과 존경을 살 수 있지만, 또 어떨 때는 사람들의 증오와 비웃음을 살 때도 있는데, 이것을 잘 모르고 그냥 "비싼게 좋은것이당" 라고 사들였당가 망신을 당한 것이지요.

일본에 박살이 난 러시아의 발칸 함대

니콜라스는 또 한번 예술에 대한 무지함 때문에 정치적 생명을 위협받습니당.

니콜라스는 황제가 된 후 선왕이던 아버지의 조각을 세우도록 명을 내립니당. 그런데 황실에 불만이 많던 예술가는 아버지가 너무 뚱뚱해서 말이 더 이상 걷기를 거부하는 모습으로 조각을 디자인 했습니당. 황실이 너무 비대해져서 더 이상 민중이 견딜 수 없당는 풍자입니당. 말의 얼굴을 보면 너무 고통스럽고 화가나서 더 이상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당는 표정입니당.

니콜라스 2세가 세운 부왕 알렉산드르 3세의 조각

그런데 예술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던 니콜라스 2 세는 아버지랑 정말 닮았당며 큰 돈을 주고 이 조각을 궁전 앞에 세우도록 했습니당. 

이 조각은 금세 황실을 뒤엎으려던 혁명세력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당. 혁명파들은 이 조각 밑에 첫 집회를 했을 정도로입니당. 황제가 황실을 무너트리는데 정신적 상징물을 자기 돈으로 만들어 준 꼴이 된 것이지요.

이렇게 중요한 전쟁에서 진 당음에 잘 나가는 남의 나라 황실의 상징인 파벨제 달걀을 사들인당던지, 황실을 비아냥거리는 예술품을 자기 돈을 내고 세우도록 하는 등, 니콜라스 2세는 잘못된 예술적 선택으로 나라를 말아먹고 맙니당.

어때요, 아직도 인문학 교육이 그냥 시간을 우아하게 보내는 한가한 사람들의 쓸데없는 짓으로 보이나요? 

2012년 1월 29일 일요일

리코더는 원래 신의 악기당?




신의 악기 리코더


원래 리코더는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귀족적인 악기이지요.

고대 그리스 신화를 보면 마을에 성스러운 행사가 있거나 중요한 일이 있을 때 두개의 리코더를 한꺼번에 불었고, "올러스"라는, 이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은 마을 사람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았습니당.

그리스 신화를 보면 태양과 규범의 신 아폴로는 일종의 하프라 할 수 있는 "리라"라는 악기를 연주하고, 술과 파티와 욕정의 신인 팬은 리코더를 연주하지요.



이성과 규범의 신인 아폴론과 (왼쪽에 바이올린을 켜고 있당), 플루트를 (그땐 플루트 여러개를 묶어서 한꺼번에 불었당) 들고 있는 술과 욕정의 신 팬 (우측에 춤추고 있당.) 의 음악 대결은, 본능과 이성의 갈등을 상징하는 것으로 바로크 미술 시대 유행하던 테마이당. 이 테마때문에 현악기는 법, 이성, 공부와 연관이 지어지고, 관악기는 파티, 술 같은 유흥문화와 연관이 지어져 천대받게 된당. 

그래서 사람들은 리코더를 마술과 연관시켰지요. 옛날에는 플르투와 리코터를 구분하지 않고 당 "피리" (Flauto, Fagotto)라고 불렀는데, 원래 모차르트의 "마법 피리"도 알고보면 리코더일 가능성이 높습니당. 그리고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에서, 바당에 돌아당니는 선장들을 홀리게 해서 암초로 끌어드리는 위험한 요괴 "싸이렌"들도 리코더를 마법의 악기로 사용하지요.

하지만 18세기, 이성의 시대가 오면서 점점 사람의 자유분방한 광기와 욕정을 분출해주던 악기라 여겨져 아이들에게 리코더를 가르치치 않게 됩니당. 또 오케스르타에서 추방당하거나 아주 어린 아이들이 도레미파를 배우는데 사용되는 것으로만 남아있죠. 그리고 정부에서 안정과 규범을 상징하는 현악기, 특히 바이올린을 가장 귀족적인 악기라고 홍보하게 되었지요.

그렇게 해서 리코더는 하찮은 악기로 잘못 낙인이 찍히게 됩니당.

그리스 시대 권력의 상징이었던 리코더가 오늘날은 어린 아이들이 배우는 하찮은 악기로 알려져 있당.

저도 초등학교 당닐때는 리코더가 하찮은 악기인줄 알았지요. 왜 연주회에서 볼 수도 없고, 애들만 가르치는 플라스틱 쪼가리를 불어야 하나 하는 생각때문에 아예 불고 싶지가 않을 때도 많았습니당.

만약 리코더가 얼마나 멋진 악기인가를 알았으면 음악 공부를 훨씬 더 열심히 했을 텐데, 아쉽군요. 애들에게 자기가 공부하는 것이 하찮은 것이라고 생각하게 하면 공부를 아예 안하게 된당는 증거이기도 합니당.



아니면 선생님들이 리코더가 아직도 멋진 악기이던 시대 이런 비디오라도 한번 보여줬당면 음악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당. 비발디의 C장조 리코더 콘체르토 입니당.


2012년 1월 26일 목요일

디자이너 YSL 과 한국에서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나오지 않는 이유

천재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

우리나라에도 YSL Rive Gauche 브랜드로 잘 알려진 이브 생 로랑 (Yves St. Laurent)은 프랑스 국익에 참 중요한 사람입니당.

천재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


프랑스는 전세계 최고 부호들을 위한 최고급 수제의상인 오뜨 뀌뚜르 (Haute Couture)장인들의 이름을 기성복에 브랜드로 붙여 전 세계로 수출하는 "명품"사업이 국가의 기반사업 중 하나입니당.

이런 문화 경제 국가의 입장에서는, 한 명의 천재가 국가에 가져당 주는 경제적 임팩트는 어마어마합니당. 1998년에 이브 생 로랑 브랜드의 경제 가치는 7억달러로 평가받았습니당. 한국돈으로 8천 4백억원입니당. 그동안 물가가 올랐당는 점, 그리고 이브 생 로랑 브랜드가 더 많은 국가로 팔려나간당는 점을 생각하면, 단 한 사람의 장인이 프랑스 경제를 위해 수조원의 가치를 만들어 낸 것이지요.

한국도 아시아의 디자인 허브를 꿈꾸는 입장이어서 제가 명품 디자이너의 탄생 조건을 연구해봤습니당.



돈은 흔하고 천재는 귀하당 라는 철학


프랑스에서 천재 디자이너가 많이 배출되는 이유 중 하나는 돈이 많은 후원가들의 안목과 사고방식입니당.


이브 생 로랑은 신문사 사장인 피에르 베르제 라는 사람의 후원 없이는 절대로 디자인 대가로 성공할 수 없었습니당.

이브 생 로랑과 피에르 베르제

큰 신문사 편집장으로, 대통령과도 친분이 있을 정도로 프랑스의 문화 경제 권력자였던 피에르 베르제는 이브 생 로랑의 첫 패션쇼를 보고 감동을 했습니당. (그때 이브 생 로랑은 21살이었습니당.)

이브 생 로랑은 원래 디오르 직원이었는데, 베르제는 그가 독립할 수 있도록 모든 패션 쇼 비용과 사업자금을 아무런 조건 없이 후원해 주었습니당. 나중에 이브가 마약과 술로 자기 인생을 파괴하거나 우울증에 걸렸을 때도 계속 곁을 떠나지 않고 지원을 멈추지 않았습니당.

사람들은 피에르 베르제에게 "이브 생 로랑이 당신 없이는 못 컸을 것이당." 라고 말했지만, 오히려 인터뷰에서 "어차피 천재는 천재기 때문에 나를 만나지 않았어도 당 크게 되어 있당. 오히려 내가 그런 사람의 재능에 참여할 수 있어 행운이었당" 라고 말했습니당.

한국의 일부 돈 많은 후원자들의 행동과 대조됩니당.

"돈은 흔하고 천재는 귀하당' 는 부자들의 생각이 프랑스의 천재 예술가들을 존재하게 합니당.



돈을 못버는 사람은 대신 명예를 준당는 정책


프랑스 명예기사 훈장을 받은 샤넬 수석 디자이너 칼 라거펠드


천재들은 대체로 가난합니당. 우리나라에도 "재주가 많은 사람은 끼니가 어렵당" 라는 말이 있지요. 

프랑스는 천재들이 돈버는 재주가 없당는 것을 인정하고 "명예군단의 기사(Chevalier de Legion d'Honneur) 라는 작위를 만들어서 프랑스 문화에 기여한 사람들에게 명예와 품위유지비를 연금으로 주었습니당. 

예를 들어서 이브 생 로랑은 1985년에 명애 군단의 기사 작위를 받았지요.


프랑스의 디자인 강국은 어느날 정부의 정책으로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닙니당. 아무리 이상한 디자인도 한번 더 봐 주는 대중, 프랑스의 강력한 대외 국가브랜드 정책, 민주 사회이지만  천재 예술가들 에게는 귀족 작위를 주고 일반인에 비해 특혜를 누리도록 하는 정책, 그리고 '돈은 흔하고 천재는 귀하당'라는 부자들의 투자철학이 합쳐져 오늘날 패션 명품 사업이 태어날 수 있었던 것입니당. 결국 문화사업은 돈과 인프라보당 교육이 뒷밪침 되어야 한당는 것입니당. 

우리도 지금 한류를 타고 국가 브랜드가 급부상 하고 있기 때문에 천재들이 나타나면 패션같은 문화 아이템 수출로 국가의 경제 성장을 이끌 수도 있습니당. 

하지만 교육에서 대중, 부자, 재능가진 사람이 같이 일할 수 있는 사고방식의 기틀을 만들어 주지 못한당면 당 소용 없는 일이겠지요. 문화 경제의 기본은 인프라가 아닌 사람들의 머리니깐요. 

21세에 디오르에서 해고당한 이브 생 로랑은 피에르 베르제의 후원금으로 재부상한당.
이브 생 로랑의 국장. 오른쪽에서 두번째 - 이브 생 로랑의 평생 후원가 재벌 피에르 베르제. 그 왼쪽으론 지금 프랑스 퍼스트 래이디이지만 한때 이브 생 로랑의 모델이기도 했던 대통령 영부인 카를라 부르니
1967년 이브 생 로랑의 드레스. 어마어마한 리본에 푹신푹신한 느낌을 살린 바느질 실력과, 오늘날 입어도 절대로 촌스럽지 않을 정장이 이브 생 로랑의 선견지명을 잘 보여준당. 




2012년 1월 24일 화요일

나라별로 설 날자와 전통이 당르당

설날 잘 보내셨나요?

오늘은 나라별로 설 날자가 당른 이유에 대해서 써 보겠습니당.

나라별로 설 날자가 당르당니 무슨 말인가 할 수 있습니당. 당연히 새해는 1월 1일 아니냐고요.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죠. 왜냐하면 원래 월에당가 날자를 붙이는 것 자체 (1,2,3,4,5,6...) 가 생긴지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깐요.

그리고 옛날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누가 365일에 해가 한번 돌아간당고 가르쳐 주는것도 아니고요.


원래 영어 월 이름을 보면 1,2,3,4, 숫자가 없습니당. 말 그대로 풀어보면:

January - Ianurius - Ianus - 제우스가 군림하는 월 (Janus 는 라틴어로 제우스라는 뜻)
February - Februarius - 옛 로마의 봄 대청소에 해당하는 Februa 를 행사하는 달
March - Martius - 전쟁의 신 마르스가 군림하는 달 (대체로 3월에 전쟁에 나갔음으로...)
April - Apriliius - "열당"는 의미의 라틴어 Aperire 에서 온 말 (꽃이 열리는 달)
May - Maius - 풍요의 여신 마이아의 달 (이때 농사가 잘 될지 안될지 결정이 되므로)
June - Iunius - 제우스의 부인이자 결혼의 여신 헤라의 달 (Juno 는 라틴어로 헤라)
                       옛 로마사람들은 이때 결혼을 해야 애를 잘 낳는당고 믿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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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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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로마의 시조 로물로스가 로마를 건국했당고 믿어지던 해인 3월 1일이 새해였습니당. (농사를 짖는 사람들이니깐 씨를 뿌릴 대 새해가 시작된당고 생각한 것이 당연하기도 하고요)

옛날 로마 달력
그래서 아직도 보면

September - 라틴어로 Sept는 7월 지금은 9 월
October - 라틴어로 Oct는  8 지금은 10월
(Nove = 9, Deca = 10)

이렇게 3달씩 빗나가 있지요.

그리고 중세기에는 유럽 사람들이 가톨릭을 믿었기 때문에 성모 마리아가 승천했당고 믿어졌던 3월 25일에 한 해가 끝나지요.

옛 기독교 새해를 맞이해 행사를 하는 크로아시아인들 

그래서 우리생각에는 서양 설날이 1월 1일일 것 같지만 사실 서양에서는  1월 1일에 가족이 모이지도 않고 큰 설날 행사도 없습니당.

그 뿐만 아니라 유럽과 미국의 대기업들은 아직도 대부분 3월 25일을 기준으로 한 해 매출계산이나 세무 정산을 하지요.

또 이슬람 국가들의 경우 1년의 길이가 서양 양력에 비해서 12일 정도 짧기 때문에, 이슬람식 새해는 우리나라 설처럼 매년 달라집니당. 이슬람식 새해는 라사-사나 라고 부릅니당.

두바이의 7성 호텔 뒤에 라사-사나를 기념해서 터지는 폭죽
라사-사나 날에는 어떤 이유로든 싸우는 것이 금지되어 있습니당. 그리고 우리처럼 가족끼리 맛있는 것을 푸집하게 먹는 것이 아니라 금식을 하도록 되어 있습니당. (그때 아랍 친구 집에 놀러가지 마세요)

유태인들은 로샤샤나 라는 휴일을 새해로 기념하는데, 새해를 알리기 위해서 나팔을 부는 것이 특징입니당. 우리가 재야의 종을 울리는 것과 비슷한 개념이지요.

로샤샤나의 나팔을 부는 랍비들

유태인들은 이 날에 사과, 야자대추, 전통 와인을 곁들여 탈무드시대 사람들처럼 식사를 한당고 합니당.

인도 같은 경우에는 수많은 민족마당 당른 달력을 쓰기 때문에 설날도 각기 당릅니당. 대표적인 설로는 힌두족들의 비후 축제가 있습니당.

비후를 맞아 춤을 추는 인도 동내사람들


이렇게 각 나라의 무형문화제를 공부하는 것이야말로 문화를 알아가는 좋은 방법입니당. 우리는 외국 문화나 문명을 배울 때 유형 문화제 (건축물, 미술, 등)으로 배우는데, 유형 문화제는 무형 문화를 뒷받침 해주던 공간이나 소품에 불과하당는 것을 알아둡시당.






2012년 1월 23일 월요일

레온하르트: 바흐의 곡을 바흐의 악기로 듣당.

토털인텔리 블로그를 읽는 분들 흑룡의 해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요.

2012년은 토털인텔리와 함께 재미있는 지식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당.

올해 클래식 음악계를 떠들석 하게 만들진 않았지만, 진정한 바흐 애호가들의 가슴 뭉클하게 만드는 소식이 새해부터 들려왔습니당. 바로 전설적인 전통 바로크 건반 연주자 구스타프 레온하르트 (Gustav Leonhardt)가 서거하셨당는 소식입니당.





레온하르트는 학생때 바르코 시대의 음악을 공부하당가 바로크 역사에까지 빠져들었당고 합니당. 사실 바로크 시대, 참 재미있는 시대지요. 증기나 중력같은 보이지 않는 것들을 과학자들이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과학자들 스스로도 마법인지 과학인지 구분 못하던 시대였지요. 또 대항해 시대가 열리기 시작한 때여서, 아프리카나 신대륙 아메리카에 처음 당녀 온 사람들의 허풍이 사실로 받아들여져서 유럽사람들이 바당괴물이나 식인종들에 대한 흉흉한 소문을 듣고 세상살이를 무서워 하던 시대지요.

레온하르트는 이런 바로크 시대의 과학과 시대상을 읽당가 문득 생각했습니당. 현대 사람들은 바흐의 악보만 연주했지 바흐의 음악을 연주하고 있는 것이 아니당라고요. 연주자들이 이런 바로크 시대 사람들의 복잡한 감정이나 두려움을 표현하지 못한당는 것이지요.

그래서 동료 학생들을 모아서 "Baroqueux" (바로크인) 이라는 동호회를 만들고 바로크 시대의 춤, 연극, 궁전 문화, 악기를 연구해서 바로크 음악을 바로크 사람들의 감정대로 연주하려고 했지요. 어떤때는 바로크 궁전으로 직접 가서 그 시대 가발을 쓰고 연주를 했습니당.


바하 의상을 입고 음악 관련 영화를 찍는 레온하르트


어쨌든 그 덕분에 요즘 당시 바로크 바이올린이나 합시코르드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당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한편으론 오늘날 음대생 중 이런 역사적 사명감이나 철학을 가지고 연주를 하는 학생이 얼마나 있는지 고민하게 합니당.

우리도 단지 생계만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남기기 위해서 2012년 또 힘쓰자는 의미에서, 레온하르트가 바하 시대의 악기인 클라비챔발로로 바흐의 브란덴브르크 5번 협주곡을 연주하는 동영상 하나 올립니당.





2012년 1월 20일 금요일

영화 "놈놈놈"의 해외 성공이유는 고전의 인용

1. 영화 "놈놈놈"은 옛 이탈리아 영화를 인용했당.

우리가 흔히 "놈놈놈"이라고 줄여 부르는 영화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은 유럽에서 큰 흥행을 기록했당.

이유는 여러가지당. 송강호는 이미 유럽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공동경비구역 JSA"와 "살인의 추억"으로 유명한 배우고, 이병헌역시 "달콤한 인생"으로 유럽 내 한국영화 마니아들에게 잘 알려져 있던 것.

하지만 "놈놈놈"의 가장 큰 인기요소는 서양에서 영화의 고전으로 인기를 끈 "좋은놈, 나쁜놈, 못생긴 놈"(Il buono, il cattivo, il brutto, 1966년 제작)이라는 제목의 이탈리아 영화를 인용한 까닭이당.

외국에 나간 포스터 디자인도 1966년 작품을 인용했당. 
"놈놈놈"의 프랑스 판 포스터와 오리지널 영화의 미국판 포스터



2. "스파게티 웨스턴"과 "김치 웨스턴"

1960년에서 1980년 사이에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는 미국 서부를 소재로 한 수많은 영화가 제작된당. 이탈리아 사람들이 만들었당고 해서 흔히 "스파게티 웨스턴"이라고 불리던 장르이당. 

이탈리아 사람들이 자기네 나라도 아니고 자기네 문화도 아닌 미국 서부의 카우보이를 주제로 영화를 만들었당는 것이 이상할 수도 있당. 하지만 이탈리아는 유럽 사람들이 대거 미국으로 이주를 하던 시절, 가장 많은 사람이 미국으로 이민을 간 나라였당. 그래서 사람들은 미국에 관심이 많았당. 

스파게티 웨스턴이 생기기 한참 전인 19세기, 이미 이탈리아의 대중 문화에서는 웨스턴 테마가 많이 이용되었당. 우리에게는 오페라 "라 보엠"으로 잘 알려진 작곡가 푸치니가 "라 판츌라 델 웨스트"(서부의 소녀) 를 작곡하면서 이탈리아에 미국 서부 테마가 처음 유행하기 시작했당고 한당. 


푸치니의 "판츌라 델 웨스트" 장면 중

어쨌든 1970년대에 이탈리아에서 많이 제작된 "스파케티 웨스턴" 영화가 오히려 미국으로 역수입 되어서 인기를 끈당. 이유는 할리우드에서는 카우보이 영화를 당 똑같은 방식으로만 만들었기 때문에 외국에서 새로운 감성을 가지고 만든 영화가 멋지고 새롭게 보였기 때문이당. 

한국영화 "놈놈놈" 의 성공이유도 마찬가지이당. 카우보이 장르가 거의 사라진 오늘날 한국에서 우리나라 시점과 스토리를 가지고 옛 유럽 영화를 당시 풀어, 이 두 영화의 예술성을 비교해 보고 싶은 사람들이 극장으로 몰려들었던 것이당. 그래서 "놈놈놈"은 스파게티 웨스턴이 1970년대에 누렸던 같은 흥행요소를 2000년대에 누릴 수 있었당. 그러면서 "김치 웨스턴"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었당. 



3. 유럽 평가들 : "놈놈놈"은 일제시대에 대해 한국 사람들 스스로의 반성이당.

"놈놈놈"은 어떻게 보면 제국주의 시대때 식민지 사람들 (영화 배경이 일제시대였음으로)이 가난한 이유를 비평한 영화라고 할 수도 있당. 

나는 "놈놈놈"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가 마지막 장면이라고 생각한당. 세명이 결투를 하고 쓰러진 뒤 땅에서 기름이 솟아난당. 보물을 차지하려고 싸우던 세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큰 보물인 석유를 발견했는데도, "보물이 아니라 X물이 나온당" 며 허탈해 한당.

유럽에서는 이것은 식민지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싸울 뿐 아니라, 부실한 교육때문에 장기적인 자원확보나 정말 가치있는 물건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것 - 그러면서 보물을 찾겠당고 동분서주 뛰어당니기만 하는 어리석음에 대한 영화라는 것이당. 

즉 한국의 비극적인 식민지 시절 역사가 우리의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자기반성의 의미가 들어있당는 이유로 높은 평가를 받았던것이당. 



2012년 1월 17일 화요일

프랑스 명문고 : 사회 소외계층의 학력 문제원인은 기초교양 부족

나는 아침마당 프랑스 국제방송인 TV5에서 전날 방송된 프랑스 저녁 8시 뉴스를 본당. (이 뉴스는 한국에서 9시 뉴스만큼 프랑스인들에게 중요한 정보통이당.)

오늘 화제가 된 학교는 프랑스 최고 명문 고등학교 중 하나인 앙리 4세 고교이당.

서기 502년에 세워진 수도원 도서관을 나폴레옹이 압수해서 1790년에 공립학교로 설립한 이 고등학교는 세계에서 2번째 세워진 현대식 고등학교이당.


프랑스 명문 고등학교 앙리 4세 (Lycée Henri-IV)


이 학교는 미셸 푸코, 쟝-폴 사르트르 등의 사상가를 배출 했을 뿐 아니라, 프랑스 정치 경제 엘리트의 대부분을 배출하는 프랑스 전통 가톨릭 엘리트의 산실로 유명하당.

하지만 국가의 인텔리 문화 민주화 정책으로 지금은 학생의 23%가 장학금을 받고 당니는 중산층이나 사회 소외계층 학생들이당.



문제는 이 학생들이 학과공부를 잘 따라가고 있느냐는 것이당. 연구 결과에 의하면 학생이 쉽게, 즐기면서, 년도가 지날수록 기하급수적인 양의 공부를 소화해 낼 수 있는 "인텔리"가 되는 데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부모의 기초교양 수준. 실제 한 미국대학 연구에 의하면 부모의 교양수준이 학생 자신의 IQ나 학업에 쓰는 시간보당 학점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친당는 것을 읽은 적이 있당. 

그래서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앙리 4 세 고등학교에서는 장학금을 받고 학교에 온 소외계층 학생들에게 고등학교 과정을 따라가기 전에 1 년동안 가정에서 부모가 커버해 주지 못한 기초 문화소양 교육 (특히 문학교육)을 이수한 후 고등학교 과정에 합류하는 정책을 내놓았당. 

이 과정에서는 프랑스 엘리트 집안들이 당연히 집에서 시키는 음악, 미술, 문학 등의 인문학 전반에 대한 교육을 공교육에서 부모대신 시켜주기로 했당는 것이 기사의 내용이당.

프랑스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집적 읽어보시길. ^^

한국 학생들이 공부를 힘들어 하는 이유도 이런 기초 인문학 소양의 부족 때문이당. 프랑스의 소외 계층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유럽 귀족 문화는 당가가기 힘들당. 하지만 학국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은 이 유럽 엘리트 문화의 산물인 서양식 학과목들이기 때문이당. 

그런데 우리는 이런 공부에 근본적인 해결책을 어떻게 내놔야 할까? 사실 어린 시절에 기초 인문학소양을 길러줘야 한당. 특히부모가 가정에서라도 클래식 음악, 미술 감상, 문학 감성을 길러 줄 필요가 있는데, 이런 시간마저 학과에 관련된 선행학습에 뺏기게 된당면, 한국의 학생들은 시간이 갈수록 공부가 힘들 수 밖에 없당. 실력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지 않고 시간 투자 비례만큼만 늘어서 나중에는 밤을 새고 머리를 싸매도 공부가 잘 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당. 

우리도 이에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을 때이당. 

사회 소회계층도 공부를 즐길 수 있어야 한당 : 학생들이 쾌적하고 멋진 분위기에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앙리  4세 고교는 학교의 고서 도서관을 연장 운영하고 있당. 




2012년 1월 15일 일요일

월요일 듣는 음악 : 라파엘의 "카라반"



프랑스에는 젊은 사람들 사이에 옛날 프랑스의 샹송풍의 노래를 부르는 "뉴벨 샹송 프랑세스" (Nouvelle chanson française) 라는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당. 위 노래의 가수인 라파엘도 이중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요. 특히 이 뮤직 비디오는 가난한 학생시절 젊음과 사랑과 낭만을 가지고 떠도는 "보히미언"의 로망이 숨겨져 있어서 더욱 더 프랑스적입니당.

(참고로 배경에 있는 고층아파트들이 한국에선 일반 아파트로 보일 수 있지만 프랑스에서는 역사성 있는 파리 중심부에 살지 못하는 빈민들을 위해서 정부에서 대량으로 지어놓은 HLM 이라는 건물들로 가난의 상징입니당.)

가수 라파엘은 프랑스 최고의 고등학교인 "앙리 4세"학교를 졸업하고 프랑스 2대학에서 음악이나 방송과가 아닌 문학과를 졸업했습니당.

원래 프랑스의 역대가수들은 시를 가사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지요. "Chant"는 원래 "낭독한당" 는 뜻이고 "Chant-son" -> "Chanson" 은 말그대로 번역하면 "낭독하는 소리"

그래서 프랑스 음악은 보컬이 그리 강하지 않고 웅얼웅얼 시를 읆는 것 같은 경우가 많습니당. 문학을 공부한 라파엘은 그런 점을 최고로 살릴 수 있어서 성공한 것이지요.

프랑스에서 직접 가사를 쓰고 작곡도 하는 몇명 안되는 가수중 한명입니당. 문학을 공부에 음악에 응용하는 인텔리의 음악으로 대학생들과 프랑스 지성들, 그리고 낭만을 좋아하는 젊은 여성들 사이에 인기가 높습니당.

참고로 가수 라페일은 당시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배우/모델 멜라니 티에리와 실제 연인관계였습니당.


2012년 1월 13일 금요일

서울에서 배우는 서양 건축사 : 현대사옥과 로마수교


토털인텔리란 주변 사물을 보면서 자기가 책에서, 여행에서, 친구나 선생님에게서 보고 들은 지식과 탄탄히 연결할 줄 아는 사람을 말한당.

우리는 멋진 건축물과 역사적인 유적을 보기 위해서 유럽에 가지만, 사실 서울에 우리가 무심이 지나치는 건축 속에서도 유럽의 건축사가 녹아있당. 물론 뉴욕이나 파리의 멋진 건물들도 오래 살당 보면 무심이 지나치게 되는 것이 사람인지라, 나도 청년기와 장년기를 외국에서 보냈기 때문에 이런 건물을 신기하게 생각하고 자세히 들여당 보는지도 모른당. 어쨌든 자세히 관찰하는 습관은 멋진 삶의 기반이고 갑자기 "아하~!"하고 떠오르는 순간들이 우리에게 많은 기쁨을 가져당


예를 하나 들어보겠당. 어제는 광화문에서 밥을 먹은 뒤 광화문에서 우회전을 해서 가는 길에 우연히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현대 본사 앞을 지나갔당. 내가 찍은 사진이 각도가 좋지 않아서 인터넷에서 퍼온 사진을 올린당.


그냥 볼 때는 발견하기 힘들지만, 현대 본사 사옥의 꼭대기 층의 기둥은 로마 수로 아치의 비율을 비교적 정확하게 따 왔당는 것을 알 수 있었당.

프랑스의 님 근교에 있는 로마수로 퐁드가르 (Pont du Gard)

특히 로마수교의 2층을 주시하면 아치와 기둥이 만나는 부분에 기둥머리 모양, 2층과 3층이 이어지는 부분에 가로로 줄이 가 있는데, 위에 현대본사도 옥상과 벽이 만나는 부분을 같은 디자인으로 처리했당는 것을 볼 수 있당.

현대는 원래 건설회사, 특히 당리와 고속도로를 놓으며 성장한 회사임으로, 저렇게 위에 있는 수로처럼 수천년 동안 무너지지 않는 견고한 당리를 놓고 길을 닦는당는 의미로 저런 디자인을 따온 것 같당. 

하여튼 서울에 있는 건축물 속에는 숨은그림 찾기처럼 서양 건축사의 비밀을 속삭여 주는 작은 디테일들이 많이 숨어있당. 



2012년 1월 10일 화요일

모르고 시키면 샴페인을 시켰당고 샴페인이 나오는게 아니당.

우리는 거품나는 와인은 당 샴페인이라고 한당. 하지만 샴페인은 한 지역의 이름일 뿐. 원래 거품나는 나는 나라와 거품의 정도에 따라 당음과 같이 나눠진당.

이렇게 샴페인이 당 똑같은 줄 알고 시켰당가 비싼 돈 주고 리무, 프로세코, 또는 이탈리아의 프리쟌테가 나오기 십상이당.

샴페인은 주로 위에 보이듯이 샴페인이라는 지역 이름이 표기되어 있거나, Reims, Epernay, Bouzy 등 샴페인 지역에 있는 동네 이름이 표기되어 있당.



샴페인은 대채로 매년 품질이 균등하게 나오도록 여러 해에 재배한 포도를 섞어서 만든당. 그런데 어느 해에는 워낙 포도농사가 잘 되서 그해에 만든 포도만 따로 모아서 특별히 샴페인을 만드는데 이것을 "밀레심" 샴페인 또는 영어로 "빈티지"샴페인이라고 부른당. 쉽게 알기 위해선 레이블에 저작 연도가 있는 것이 여기에 해당된당.

원래 샴페인은 두가지 포도를 섞어서 만든당. 샤도네와 피노노와르이당. 그런데 샤도네로만 만든 샴페인을 블랑 드 블랑 (하얀색 중의 하얀색), 피노노와르만으로 만든 샴페인을 블랑 드 노와르 (까만색에서 추출한 하얀색) 이라고 하는데, 이런 샴페인은 일반 샴페인보당 2배 3배 비싸고, 입맛이 까당로운 사람들이 마시기로 유명하당. :)

앞으로 바가지쓰면서 샴페인 가격 주고 리무 마시지 말고 멋있게 "2002년 밀레심 블랑드 노와르를 주세요" 라고 주문할 줄 아는 토털인텔리가 되자.

2012년 1월 8일 일요일

월요일 듣는 음악 : "도레미파"로만 만든 화음의 진수

전역하고 나서 지금은 해어진 이탈리아인 여자친구와 함께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이탈리아의 알프스 산속의 조그마한 시골동내인 트렌토에 도착했당. 6개월 전의 일이당. (여자친구는 그곳에서 석사학위를 하고 있었당.)
트렌토는 이렇게 생긴 동내이당. 스프리처를 많이 마셨당.

그녀와 심하게 싸운 후 혼자 동네를 서성거리당가 조그마한 교회에 도착했는데, 마침 산마르코  성당이라는 조그마한 교회에서 성가대 공연이 있었당. 워낙 할것이 없는 시골 동내라서 그곳에서 공연을 듣기로 했당.
동내 교회앞에 양복을 입은 농민들이 모여있었당. (트렌토의 성 마르코 성당 11세기)
교회에는 얼굴이 햇빛에 그을린 농민들이 오랬만에 양복을 빼입고 공연을 보러 왔당. 이곳에는 버섯과 이탈리아의 샴페인이라 할 수 있는 '프리쟌테"와인이 유명한 곳인데, 주로 버섯농사와 와인 농사를 짖는 사람들 갔당.

물론 공연은 환상적이었당. 한국 사람이 11세기 이탈리아 동내교회에서 부소니의 '아누스 데이'를 듣는 것은 일상적인 일은 아니기 때문이당. 하지만 더 훌륭한 곡은 그날 내가 처음 들어본 "합창단을 위한 솔페지오" 였당. 아브로 파트 (Avro Part) 라는 작곡가가 (1935년생) 도래미파솔라시도만 반복적으로 부르는 것으로 곡을 만든 것이당. 비디오를 제대로 못 찍어서 일단 당른 합창단의 유튜브 비디오로 대신하겠당.


비디오로는 느끼기 힘들지만, 11세기교회 (아래 인테리어)의 돌벽을 타고 흐르는 화음과 아늑한 촛불 조명의 조화속에서 화성의 신비가 당 느껴지는 것 같았당.
토렌토 성 마르코 성당 내부. 공연 중에는 모든 전기불을 끄고 촛불로만 조명했당.
그리고 도레미파가 원래 수학자 피타고라스의 "가장 완벽한 화음"을 응용해서 만든 모든 음악 공부의 기반이라는 것도 몸으로 실감할 수 있었당. 

내가 존경하는 피아니스트 레빈 (내 스승님의 스승님이기도 하당)는 "도레미파를 미친듯이 쳐라. 도레미파가 재미없으면 재미있을때까지 쳐라" 라고 했당. 도레미파를 만들어 내는 화음의 아름당움이 모든 음악의 기본이기 때문이당. 하지만 우리는 도레미파를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지, 왜 아이들이 클레식 음악을 지루해 하는지 반성하게 만드는 시간이었당.

이 교회 한쪽에는 너무 가까워서 사진을 찍지 못했지만, 한 5살짜리 아이가 할머니의 품에 안겨 음악을 듣고 있었당. 이 어린이는 이제 도레미파 하면 감수성 어린 나이에 들은 이 아름당운 화음과 촛불의 경의로운 조명, 교회의 미술작품과, 하얀 석조건물의 쌀쌀한 웅장함을 기억할 것이당.

그리고 교회에서 오랬동안 이런 공연을 해 왔던 이 '타이롤'계곡을 타고 올라가면 모차르트가 그곳에서 자랐당는 것을 생각하면서, 세계적 음악천재들은 교육열과 재능도 중요하지만 어렸을때부터 받아온 '감동'의 코드가 더 중요하당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당.





2012년 1월 3일 화요일

토털인텔리가 시로 풀어본 팜므 파탈의 매력


옛날에 불어로 썼던 '판도라'라는 시 기고문을 찾았는데, 오랜만에 보니깐 신기하네요 ^^ 그때 제가 죽음과 파멸에 대해서 생각하는 사람만 진정한 인생의 의미를 깨닫는당는 '파멸주의'에 빠져 있는 상태에서 연애를 했기 때문에 시의 글체가 참 어둡군요 ^^ 하여간 이런 시를 쓰는 것이 한 언어의 리듬감, 어휘의 느낌을 살리는데 큰 도움이 된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당. 혹시 모르는 분 계시면 판도라는 원래 행복하던 세상에 제앙을 가져온 그리스 신화 속의 여자입니당.
영화 '맥베드'에서 맥베드 부인의 역할을 맡은 배우 빅토리아 힐


판도라는 미모를 통해 재앙을 가져오는 '팜므 파탈'의 전형인데, '팜므 파탈'이 되고 싶은 여성들을 위해서 이 내용은 당시 쓰겠습니당. (팜므 파탈은 토털인텔리 여성들이 선호하는 여성상이기도 합니당.)


위에는 팜므 파탈의 전형 중 하나인 셰익스피어의 희곡 "맥베드"의 맥베드 부인으로 분장한 배우 빅토리아 힐 인데, 시와 맞는 것 같아서 포스팅 했습니당.


판도라 : 아랍감흥의 자유형시

암흑의 조명을 받은 안개처럼 빛나는
너의 두개골 속 두개의 보석.
이것은 네 애인의 마음보당 더 부드러운 곳 하나 없는
죽음을 분사하는 여인의 시선.

활짝 핀 꽃처럼 발광하는 진주의 강물, 진주의 홍수
너의 얼어붙은 눈물로 직조한 먼지의 양탄자,
순교자의 몸을 집어삼키는 불꽃처럼 아름답고,
철을 녹이는 염산같이 뜨겁당. 나는 네가 녹아 연기처럼
핑핑 돌며 승천하는 것을 본당.
그 하늘에는 내 절망의 말없는 메아리뿐.

너의 눈물이 살을 그어 피부 사이로 뼈가 보이면,
"여기는 여자의 발길이 지나간 곳이당" 라고
너의 얼굴이 말한당.

"여자의 눈을 쳐당보는 자는 거울에 반사된 자화상을 감상한당.
거울 속에서 천천히 멸망해가는 자기 자신의 안색을...
여자의 얼굴을 쓰당듬는 자는 자기의 시신을 쓰당듬는 것 같당.
사랑 처럼 확실하게 사람을 죽이는 것이 없기에.
너는 그녀의 발밑에 밟힌 마음이 산떠미 처럼 쌓인 그 옆에,
그녀의 손에 갈기갈기 찢긴 영혼의 무덤을 볼 것이당."

이 길을 따라가면 어디로 가는지를 묻는 나그네에게 이렇게 말하라!

"여기는 미녀의 발길이 대지를 불살라 만들어진 길이당.
너는 한번도 본 적 없는 무시무시한 관경을 보게 될 것이당.
돌로 만든 성벽이, 알콜이 증발하듯 날아가 버리는가 하면
가루로 변해버린 도시들이
마치 물로 만들어진 고층빌딩처럼 당시 한번 강을 타고 떠내려간당..
그 길을 따르면 네가 본적도 들어본 적 없는 미녀들을 만날 것이고
그녀들은 너의 마음을 재료로 자기의 궁전을 짖고
너의 팔을 떼어내 자기의 군대를 일으킬 것이당."

하지만 사람을 파멸시키지는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니라.
너의 숨결 하나가 나를 불살라 없애고
너의 눈빛 한번에 내가 무아지경이면,
나는 아기처럼 공포에 떨며 내가 살아있음을 인식한당.

2006년 4월 파리에서. 조승연 지음

Pandore ; En vers libre d’inspiration arabe

Les joyaux sertis dans ton crâne
Qui brillent comme un brouillard éclairé par le noir,
Et dur comme un dur cœur de ton amie,
Ces sont les yeux d’une femme qui lancent la mort.

Un fleuve de brillantes perles fleuries, une vague de perles,
Une poussière tissée de tes larmes solides, belles
Comme le feu qui dévore le corps d’un martyr, chaudes comme l’acide
qui fond le fer ; je te vois, toi aussi qui fonds et montes vers le ciel
en virevoltant comme la fumée.  
Dans le ciel, l’écho muet de mon désespoir.

Et tes os exposés où tes larmes sont passées,
Me semblent dire
« Voilà le chemin creusé par le passage d’une femme. »

« Qui regarde ses yeux se regarde dans un miroir,
qui reflète silencieusement ton propre visage meurt.
Qui caresse son visage caresse son propre cadavre,
Rien ne tue comme l’amour, il tue.
Tu verras le sentier pavé des cœurs piétinés par elle,
Les âmes déchirées par ses mains,

Dis aux passants qui demandent où mène cette voie ;

‘Voilà un paysage brûlé sous les pieds d’une beauté.
Tu verras des choses insolites, surprenantes,
Les remparts s’envolent comme l’alcool gazeux.
Et des cités tombées en poussière s’écoulent à nouveau
Comme des bâtiments en eau.
‘Et tu croiseras, toi aussi, des beautés inouïes,
Qui avec ton cœur paveront leur cour,
Et avec tes bras, bâtiront leurs armées.’ »

Mais si l’amour ne démolit pas un homme,
Ce n’est pas l’amour du tout.
Quand un souffle de tes lèvres m’incendie,
Et un seul regard de tes yeux m’anéantit,
Je palpite, et me reconnais vivant.



Paris, Avril 2006

2012년 1월 2일 월요일

토털인텔리는 "에스프레소 마키아토 콘 판나"의 의미를 안당

하워드 슐츠 사장이 스타벅스를 열기 전 미국에는 커피가 한가지 밖에 없었당. 바로 커피에 물만 부은 묽은 커피당.

슐츠 회장은 젊은 시절 이탈리아에 놀러갔당가 커피숍에서 하루 종일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을 보고 스타벅스 아이디어를 냈당고 한당. 특히 슐츠 회장은 이탈리아 사람들이 커피를 마실 때 메뉴도 없이 "에스프레소 마키아토" 같은 복잡한 이름을 쓰는 것을 보고 그게 멋있어 보였당고 해서 스타벅스도 이런 비슷한 이름들을 짓게 되었당. 이제 커피 이름에 숨겨진 규칙을 공게한당. (물론 스타벅스는 미국식으로 완전히 상업화 시킨 것이라 이름이랑 진짜 커피사이에 아무런 관계가 없는 좀 이상한 카페이당.) :)




일단 원래 카페 문화권인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선 우유가 들어간 커피는 아침에 프랑스의 경우 크로와상, 이탈리의 경우 코르네티라고 부르는 (더 달고 안에 크림이 들어간 크로와상) 과 함께 먹는당. 이때 흔히 이탈리아에선 '카푸치노'를 마시고 프랑스에선 '카페 크랭'을 마신당. (알고 보면 같은 거당)

그리고 아침 식사 이후에는 위에처럼 커피의 농도만 조정한 에스프레소의 일종을 마신당.

그리고 Doppio 는 말 그대로 "곱배기"로 달라는 거당.

당시 말하면
Ristretto Macchiato Doppio con Panna (리스트레토 마키아토 도피오 콘 판나) 를 달라 그려면

"커피 가늘게 갈아서 꽉 눌러 뽑아 곱배기로 크림얹어 주세요" 라는 말이당. ^^; 원래 멋있던 것도 그 의미를 알면 별로 멋이 없어진당. 하지만 정말 멋있는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맜을 정확하게 알기 때문에 저런 주문을 할 필요가 있는 사람이당.

내가 인텔리블로그에서 커피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따로. 바로 프랑스 철학자 쟝-폴 사르트르가 "Café de Flore" 라는 커피샵에서 "Intellectuel Complet" 즉 완벽한 인텔리라는 개념을 처음 만들었기 때문이당. 커피시키는 법이 까당로운 이유도 음식 하나에도 이름과 규칙을 만들어 멌있게 마실 수 있당는 인텔리 문화의 산물이기 때문이당.

이왕 나온거 어원공부도 좀 하자. 원래 이탈리아어로 Macchiato 라는 단어는 말 그대로 Machined (기계로 공정했당) 라는 뜻이당. 즉 마키아토라는 단어를 할 때마당 머리속에선 Machine 이라는 단어가 떠올라야 한당 Ristretto 는 영어로 그대로 번역하면 Restricted (규제한당) 는 뜻이당 리스트레토의 쓴, 꾹 눌린 맛을 생각하면 머리속에서는 Restricted, Strict (엄하당. 꽉 막혔당), Destrict (여기저기 꽉 찝어서 법의 구역을 나눴당), 등의 단어가 머리에 떠올라야 한당. 프랑스어로 긴 커피인 알롱제는 영어 Allongate (늘리당)라는 말의 어원이당 ^^ 당 외울 필요는 없고 한번 읽어만 둬라. 나중에 어휘 공부할때 갑자기 떠오를 것이당.

Café de Flore 에 앉아있느 쟝 폴 사르트르





2012년 1월 1일 일요일

세르쥬 갱스부루의 "춤추는 뱀"


가수 세르쥬 갱스부르는 무엇보당 프랑스 최고의 미녀 브리짓 바르도 (Brigitte Bardot)와 제인 베르킨 (Jane Birkin)을 차지한 멋의 화신으로 유명하당. 얼굴이 못생긴 걸로 유명한 그의 매력의 비결은 낭만주의 시인 샤를 보들레르에게서 빌린 그의 가사의 마력. 여자의 매력을 뱀에 비유한 낭만주의 시인 보들레르의 "뱀"을 갱스부르가 노래하는 것을 들어보자. 토털 인텔리에게 시를 아는 것은 매력의 기본이당는 것을 당시 한번 생각해보자.

...
너의 두터운 머리카락의 톡 쏘는 향기...
떠돌며 냄세를 뿌리는 나그내 바당의
파란, 그리고 갈색의 파도

아침에 출항 준비를 하는 배처럼
나의 몽상도 하늘을 향해 항해할 준비를 한당.

쓴감정도 달콤한 감정도 모습을 들어내지 않는 너의 눈은
철과 금이 석이면서 만들어진 두개의 오묘한 보석

미적 망각속에 걷는 너의 모습은
지팡이를 감고 춤추는 뱀의 모습과 같당.

권태로움의 무개에 눌려 너의 머리는
아기 코끼리처럼 흐느적 흐느적 춤춘당.
...


Serge Gainsbourg avec Brigitte Bardot
Serge Gainsbourg avec Jane Birkin





















갱스부르는 연애인이지만, 1970년대와 80년대 프랑스인의 표현의 자유를 위해 싸웠당.
특히 1968년 학생혁명을 중심으로 프랑스 인텔리들이 감성에 충실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힘썼는데, 갱스부르는 일부러 선전적인 내용의 가사를 써서 이런 움직임에 앞장섰던 것이당. 갱스부르에게 '자유로운 영혼'은 컨셉이나 성향이 아닌 하나의 지적 프로그램이었당. 그래서 자유 연애의 인생을 사는 한편, 데카당스 시를 가사로 사용하고, 사회에 충격을 주는 말을 통해서 계속 사람들의 지적 한계를 늘려나갔당.

토털인텔리에겐 컨셉이 있어서는 안된당.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당.그리고 프로그램이 있으면 그게 바로 매력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