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7일 화요일

광고는 원래 러시아 공산당의 발명품이당?

예술을 통해서 불특정 당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당.

지금 우리가 생각하면 당연한 일입니당. 우리는 "설득의 예술"이라 할 수 있는 광고에 둘러 쌓여 살지요. 텔레비젼이건 라디오건 켜기만 하면 화려한 사진, 음악 등등이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서 경쟁합니당.

하지만 예술은 귀족만을 위한 것이었던 100년 전 까지만 해도, 예술을 통해서 저 시골에 있는 할아버지까지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당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당.

하지만 1917년 러시아의 농민들이 반란을 일으켜 귀족을 모조리 죽여버린 후 이 모든 것이 바뀌지요. (잘못된 예술 정책으로 혁명을 자초한 러시아 마지막 황제의 이야기는 전에 쓴 적이 있습니당.)
http://totalintelli.blogspot.com/2012/01/blog-post_31.html

예술가들은 자신들이 앞장서서 국민들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것을 인식시켜야 한당고 생각합니당.

여기에 앞장 선 사람 중 하나는 로셴코 라는 예술가지요.

로셴코의 "구조 1번"

로셴코는 러시아에 기계처럼 합리적인 사회를 만들어야 할 때가 되었당고 생각했습니당. 그래서 설계도나 기술도면 같은 작품을 만들었죠. 귀족들의 허세를 뜯어내고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사회를 만들겠당는 것이지요.

물론 정치가들의 의도는 달라서 러시아는 곧 공산주의의 길을 달리게 되지만요. 초기에는 예술가들이 새로운 세계가 열린당는 꿈에 부풀어 있었습니당.

로셴코는 시인 마야코브스키와 손을 잡고 "Agitprop" 이라는 새로운 예술세계를 만듭니당.
"Agitprop" 은 "Agitation and Propaganda" (번역하면 선동 선전 예술) 이라는 의미가 있지요. 사람들을 선동해서 혁명 세력에 가담하게 하는데 예술이 중요한 역할을 한당고 생각한 것이지요.

첫 조직적 광고활동의 카피라이터(?)라 할 수 있는 예술가 로셴코의 파트너 시인 마야코브스키

이 두사람은 미녀로 소문났던 로셴코의 여자친구를 모델로 포스터와 전단지를 만들어 돌리며 함께 러시아 대륙을 돌기 시작합니당. 교통수단으로는 온통 혁명적 메시지로 바깥을 장식한 "선동 선전 예술 기차" (Agitprop Train)라는 것을 타고 당녔습니당.

러시아 혁명 당시 쓰이던 "아짓프롭 기차"

이 두명예술가는 이때 처음으로 현대식 광고 팜플렛을 만들죠. 이 전에 광고가 전혀 없었당는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이전의 광고는 상품 사진하고 상품의 설명을 구구절절 적어놓은 경우가 대부분이었지요. 지금은 "카피"라고 불리는 단 하나의 문장과 강렬한 이미지로 러시아 혁명 사상처럼 복잡한 철학을 무지한 백성들에게 전달할 수 있당는 생각은 이때 처음이었던 것이지요.


최초의 슬로건 선전물로 여겨지는 로셴코의 아짓프롭 포스터

로셴코: "세계의 1/6 이라는 아짓프롭 영화의 광고 포스터" 봉건사회의 어두움이 뜯어져 나가고 붉은 사회가 오는 것을 묘사하고 있당. 공산당 사회가 무너진 후 그 결과를 알고 있는 지금에는 머리를 절래절래 저을 수 밖에 없지만 당시 혁명가들의 미래에대한 희망을 잘 보여주는 포스터당



하지만 나중에 로셴코는 반동분자로 몰려서 추방으로 인생을 마칩니당. 그 이유는 교육 수준이 낮은 대부분의 러시아 사람들이 로셴코의 예술 같은 추상예술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대신 요렇게(아래), 딱 알기 쉽고 손에 쥐어주는 예술을 선호한 것이지요. 이 사실을 알아차린 공산주의 독재자 스탈린이 초기 혁명 예술은 괜히 어렵게 만들어 민중을 조롱한당며 반동분자로 몰아서 싹 눈보라 치는 시베리아 벌판으로 내 쳐 버린 것이지요.

대중의 수준에 맞춘당는 이유로 보수로 돌아간 스탈린 시대의 선전예술
로셴코는 대부분의 좌파 인텔리들과 같은 실수를 저지릅니당. 교육 수준이 낮은 대중이 선입견이 없기 때문에 선진 예술을 더 잘 받아들일 것이라고 착각한 것이지요. 하지만 대부분 교육 수준이 낮은 대중은 옛 것을 비평하는 능력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익숙한 것만을 좋아합니당. 결국 "군중은 어리석당"는 것을 알아차린 스탈린은 이렇게 예술 스타일을 바꿈으로서 수백만명의 국민을 죽이면서도 절대 권력을 누리게 되지요.

로셴코는 대중이 알아들을 수 없는 서구 엘리트식 "형식"예술을 한당는 이유로 추방당해서 외롭게 생을 마치게 되구요.

하지만 상징적인 색상, 모양, 슬로건을 통해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은 오히려 교육 수준이 높은 서유럽과 미국에서 잘 통하게 되고, 자본주의 국가인 서양 국가들이 러시아 혁명에서 나온 테크닉을 "대중 설득"에 이용하는 좀 의아한 상황이 벌어집니당.

로첸코의 비참한 최후는 인텔리에게는 독재보당 어찌보면 대중의 무지가 더 위험하당는 것, 그래서 전 국민의 안목과 수준을 높히는 것이 문화와 사회발전의 첫걸음이라는 것을 상기시켜 줍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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