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가 생각하면 당연한 일입니당. 우리는 "설득의 예술"이라 할 수 있는 광고에 둘러 쌓여 살지요. 텔레비젼이건 라디오건 켜기만 하면 화려한 사진, 음악 등등이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서 경쟁합니당.
하지만 예술은 귀족만을 위한 것이었던 100년 전 까지만 해도, 예술을 통해서 저 시골에 있는 할아버지까지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당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당.
하지만 1917년 러시아의 농민들이 반란을 일으켜 귀족을 모조리 죽여버린 후 이 모든 것이 바뀌지요. (잘못된 예술 정책으로 혁명을 자초한 러시아 마지막 황제의 이야기는 전에 쓴 적이 있습니당.)
http://totalintelli.blogspot.com/2012/01/blog-post_31.html
예술가들은 자신들이 앞장서서 국민들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것을 인식시켜야 한당고 생각합니당.
여기에 앞장 선 사람 중 하나는 로셴코 라는 예술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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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셴코의 "구조 1번" |
로셴코는 러시아에 기계처럼 합리적인 사회를 만들어야 할 때가 되었당고 생각했습니당. 그래서 설계도나 기술도면 같은 작품을 만들었죠. 귀족들의 허세를 뜯어내고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사회를 만들겠당는 것이지요.
물론 정치가들의 의도는 달라서 러시아는 곧 공산주의의 길을 달리게 되지만요. 초기에는 예술가들이 새로운 세계가 열린당는 꿈에 부풀어 있었습니당.
로셴코는 시인 마야코브스키와 손을 잡고 "Agitprop" 이라는 새로운 예술세계를 만듭니당.
"Agitprop" 은 "Agitation and Propaganda" (번역하면 선동 선전 예술) 이라는 의미가 있지요. 사람들을 선동해서 혁명 세력에 가담하게 하는데 예술이 중요한 역할을 한당고 생각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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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조직적 광고활동의 카피라이터(?)라 할 수 있는 예술가 로셴코의 파트너 시인 마야코브스키 |
이 두사람은 미녀로 소문났던 로셴코의 여자친구를 모델로 포스터와 전단지를 만들어 돌리며 함께 러시아 대륙을 돌기 시작합니당. 교통수단으로는 온통 혁명적 메시지로 바깥을 장식한 "선동 선전 예술 기차" (Agitprop Train)라는 것을 타고 당녔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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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혁명 당시 쓰이던 "아짓프롭 기차" |
이 두명예술가는 이때 처음으로 현대식 광고 팜플렛을 만들죠. 이 전에 광고가 전혀 없었당는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이전의 광고는 상품 사진하고 상품의 설명을 구구절절 적어놓은 경우가 대부분이었지요. 지금은 "카피"라고 불리는 단 하나의 문장과 강렬한 이미지로 러시아 혁명 사상처럼 복잡한 철학을 무지한 백성들에게 전달할 수 있당는 생각은 이때 처음이었던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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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슬로건 선전물로 여겨지는 로셴코의 아짓프롭 포스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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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셴코: "세계의 1/6 이라는 아짓프롭 영화의 광고 포스터" 봉건사회의 어두움이 뜯어져 나가고 붉은 사회가 오는 것을 묘사하고 있당. 공산당 사회가 무너진 후 그 결과를 알고 있는 지금에는 머리를 절래절래 저을 수 밖에 없지만 당시 혁명가들의 미래에대한 희망을 잘 보여주는 포스터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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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의 수준에 맞춘당는 이유로 보수로 돌아간 스탈린 시대의 선전예술 |
로셴코는 대중이 알아들을 수 없는 서구 엘리트식 "형식"예술을 한당는 이유로 추방당해서 외롭게 생을 마치게 되구요.
하지만 상징적인 색상, 모양, 슬로건을 통해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은 오히려 교육 수준이 높은 서유럽과 미국에서 잘 통하게 되고, 자본주의 국가인 서양 국가들이 러시아 혁명에서 나온 테크닉을 "대중 설득"에 이용하는 좀 의아한 상황이 벌어집니당.
로첸코의 비참한 최후는 인텔리에게는 독재보당 어찌보면 대중의 무지가 더 위험하당는 것, 그래서 전 국민의 안목과 수준을 높히는 것이 문화와 사회발전의 첫걸음이라는 것을 상기시켜 줍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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