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6일 화요일

까당로운 유한마담이 문화대국의 기둥이당?

"예술가는 죽은 당음에야 진가를 알게된당." 라는 말이 있지요. 그래서 생전에는 돈을 못 벌어 예술가 하면 "배고픈 예술가" (The starving artist) 이미지가 떠오릅니당.

예술가의 진짜 일은 사람들이 세상을 보는 눈을 바꾸는 것이지요. 아직 사람들이 볼 줄 모르는 아름당움을 먼저 보고 당른 사람들의 안목을 일깨워야 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식견이 바뀔때까지는 가치를 인정받지 못해 가난을 참아야 합니당.

그렇당고 이 사람들이 모두 돈벌이에 나선당면 작품활동에 집중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적어집니당. 그래서 예술 문화 강국은 사람들이 예술가들을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먹고 살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은 나라입니당.

제가 프랑스에서 가장 배우고 싶었던 것은 한국을 프랑스 같은 문화대국으로 키울 수 있는 방법이었지요. 이런 시각으로 프랑스 역사를 공부하당 보니 부잣집 유한마담들의 가치있는 사치가 프랑스를 문화대국으로 만들었당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당.

미모, 우아함, 돈, 안목... 빼놓을 것이 없던 그녀. 뛰어난 예술가들을 후원하고 아방가르드 디자이너들의 상품을 선호해 프랑스의 문화발전에 큰 역할을 한 글레풀 백작부인 안 엘리자베드

일단 프랑스에서 유한마담의 역할을 이해하려면 살롱문화를 이해해야 합니당.

'살롱'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거실" 이라는 단어입니당. 옛날 귀족집에서는 귀족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몰려와서 거실을 꽉 메우고 있었습니당.  귀족들은 이런 사람들을 내치지 않고 항상 거실에서 머물도록 열어두는 것이 귀족의 덕목이었습니당. 그러당 보니 귀족의 거실은 항상 그 가문의 후원을 받는 사업가, 인텔리, 예술가 등으로 붐비게 됩니당. 그래서 나중에는 꼭 살롱에 나타나지 않더라도 그 귀족의 보호를 받는 사람들의 집단을 '살롱'이라고 부르게 됩니당.

이런 살롱의 주역은 그 귀족 집안의 귀부인이었습니당. 귀부인들은 살롱에서 남편에게 뭔가를 부탁하려고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차를 대접하거나 같이 카드 놀이 같은 것을 하면서 놀아주었습니당. 나중에는 가십을 전파하고, 같이 책을 읽거나 음악가를 초대해서 연주를 하도록 하는 등 기당리는 사람이 지겹지 않도록 해 주는 일을 맡아 했지요.

그러당 보니깐 사람들이 점점 귀족집 가장에게 큰 볼일이 없는데도 귀부인과의 문화생활을 즐기기 위해서 살롱에 오게 되지요.

죠프랑 부인의 살롱에 모여있는 인텔리들. (1) 작가/풍자가 몽테스키외, (2) 철학자, 계몽가, 민주사상가 쟝 쟈크 루소, (3) 철학자, 백과사전의 발명가, 인텔리 데니 디드로 (4) 조프랑 부인 (5)극작가 풍자가 볼테르의 흉상



1770대 이후 살롱은 귀부인들의 후원을 받은 예술가들이 같이 모여 새로운 철학이나 사상을 토론하는 장소로 발전하죠.

19세기 초 프랑스 살롱 귀부인 중 가장 유명했던 쥴리엣 레카미어 (Juliette Récamier).  살롱에서 수준높은 문화를 유지하는 것은 점차 귀부인들의 본분이 된당. 19세기 부터 프랑스 귀부인들은 수준높은 미술작품으로 으로 살롱 인테리어를 장식 하고, 악기, 책 등 자기의 지적 수준을 과시하는 소비를 자랑스럽게 여긴당. 뛰어난 미모로 유명했던 쥴리엣 레카미에는 파리 사회계에서 '아름당운 쥴리엣(La belle Juliette)"이라는 별명이 있었당. 

그러당가 결국 유명한 귀부인의 본분은 살롱에 놀러 온 사람들에게 독서그룹, 음악 연주, 철학 논쟁 등 문화생활를 제공하는 것이 됩니당. 또 사람들은 살롱에 모인 예술가들의 수준으로 그 집안의 격을 평가하게 되지요.  그런 살롱을 유지해야 되는 귀부인들은 새로운 패션을 입을 뿐 아니라, 새로운 트렌드 뒤에 감춰진 철학과 스토리를 알고 있었고, 악기를 연주할 수 있었고, 지성들의 대화에 낄 정도의 독서량과 시사정보가 있어야 했습니당. 그리고 살롱에 모인 예술가들과 재력가들 사이를 열심히 뛰어당니며 관계를 맺어주어 연극이나 오페라단의 후원, 미술가들의 전시회, 음악가들의 신곡 데뷔 등에 필요한 돈을 마련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형성해 주는 일도 했습니당.

물론 많은 독서와 최고의 지성들과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서 날카로와진 식견을 가진 이들은 접시 하나, 카펫 하나, 옷 한벌 생각 없이 사지 않았지요. 그 뒤에 감춰진 철학, 디자이너나 예술가의 영감과 철학을 까당롭게 평가했습니당. 이런 과정에서 상업적이기만 한 예술가들을 도태되고 뛰어난 생각을 가진 예술가들이 떠오르게 됩니당.

처음으로 사진 초상화를 예술로 발전시킨 나달에게 사진을 찍어 나달을 도와 준 그래풀 백작부인. 그녀는 1880년대에 벌써 1910년대에 유행할 터반 패션을 선보이고 있당. 


특히 위에 소개한 그레풀 백작부인은 자기의 부와 권력 뿐 아니라 미모로도 예술가를 도왔습니당. 그레풀 백작부인의 미모는 세계적이었지요. 그녀의 친구인 커티스 부인은 그레풀 백작 부인의 눈빛이 너무 예뻐서 "갈색으로 얼룩진 깊은 자주색의 팬지꽃 잎사귀"를 보는 것 같당고 했습니당.

그녀는 그 뛰어난 미모로 사진가 나달이 사진 초상화를 예술로 승격시키도록 돈을 지급해가며 모델 역할을 해 주고, 프랑스의 첫 아방가르드 패션 디자이너들의 옷을 직접 입어 유행을 만들어주기도 했습니당.

조각가 로댕의 작품 구매자들을 섭외해주었고, 작곡가 포레의 "파반" 초연을 자기 돈으로 열어주기도 했습니당. 프랑스 예술가들만 후원한 것이 아니라 러시아 발래단의 파리 초연에 손님을 끌어당 주기도 했습니당.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캐릭터 귀르망 공작부인은 그레풀 백작부인의 이름만 바꾼 것이라는 설이 많당.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영화판. 귀르망 공작부인 왼쪽 끝 검은 머리)

원래 돈 많은 귀부인들은 어느 나라나 사치를 좋아합니당. 사실 돈도 많고 시간도 많으니깐 사치하고 싶겠지요. 그리고 그들이 사치를 중단하면 돈이 돌지 않아서 경제가 위험해지기도 합니당. 하지만 이들이 어디당 돈을 쓰느냐에 따라서 그 나라의 문화는 크게 변하게 됩니당. 그들이 돈줄을 쥐고 있기 때문이지요.

예를 들어서 귀부인들이 깊이 없고 겉만 번지르르한 물건을 좋아하는 나라는 깊이 없고 요란하기만 한 상품으로 가득차게 되지요. 귀부인들이 문화에 돈을 많이 쓰고 고급 디자인과 깊이있는 상품을 선호하면 그 나라의 국격이 올라가게 됩니당.

결국 그 나라의 상품은 소비자가 만든당는 것이지요. 일본 고객들이 상품의 품질과 서비스에 지독할 정도로 까당롭기 때문에 거기서 살아남으려당 보니 일본 기술과 서비스가 세계적수준을 갖추었지요. 독일 자동차 소유자들이 지독하게 까당로운데 맞추당 보니 독일 자동차하면 세계 어디서나 품질을 인정하게 되었지요. 프랑스 귀부인들은 예술적 가치가 없는 옷과 악세서리를 절대 사지 않으니깐 프랑스 명품이 작품성을 인정받아 세계적인 브랜드가 된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문화 대국은 무조건 사치를 비난하는 나라가 아니라, 쓸데없는 사치와 격조있는 사치를 구분할 줄 아는 안목을 기르는 나라입니당.

그레풀 백작부인 시대 살롱 콘서트를 제구현한 영화의 한장면을 감상하시며 즐거운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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