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31일 토요일

"아이돌"은 공산당 춤을 춘당?

안녕하세요?

지금 일주일째 독감으로 드러누워 있습니당.
이제 간신히 머리에서 약기운이 좀 빠져서 블로깅 한번 해봅니당.

한국에서는 가요계에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탑스타들을 '아이돌'이라고 합니당.

노래보당는 가수에 촛점이 맞춰저 있는 경우, 특히 가수들이 일반인들에 견줄 수 없는 뛰어난 외모와 화려한 라이프스타일로 동경의 대상이 되는 경우를 아이돌이라고 하지요.

하지만 정작 팝 문화의 원조인 미국에서는 10대 감성의 가수들을 아이돌이라고 부르지 않고 "Girl Band" "Teen Star" "Teeny-Bopper" "Girl Group" 등 여러가지 이름으로 부릅니당.

어쩌당 한국에선 옛날 그리스 종교적 단어이던 아이돌이란 말이 틴스타를 가리키게 되었을까요?

아이돌은 말 그대로는 종교적인 단어로 "우상"을 말합니당. 우상이란 어떤 동네 사람들이 숭배하는 조각상이나, 돌이나, 나무 조각 같은 것입니당.

기원전 24,000 정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풍요의 여신 "아이돌"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아이돌은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완벽한 여성상이었습니당. 원시인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신기한 것은 생명이 태어나는 것이었지요. 원시 문화는 인간에게 생명을 주는 "여자" 처럼, 동물이나 식물처럼 우리가 더불어 사는 대자연에 생명을 주는 지구도 하나의 큰 어머니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당. 원시부족 시대에는 저렇게 "아이 잘 낳게"생긴 여자 우상들이 많이 발견됩니당.

이것이 발전해서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는 여신 숭배문화가 생기기 시작합니당.

아테네의 아이돌 "팔라디움"은 승리의 여신 니케와 지혜의 여신 아테네를 섞어 놓은 것이었당. 



그리스 시대,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과 같이 뛰어난 철학자들을 배출하고 문명의 극치를 이룬 아테네에는 "팔라디움" (위 사진) 과 같은 아이돌이 있었습니당. 팔라디움은 아테네의 지혜를 상징하는 아테네 여신이 승리의 여신 니케를 들고 있는 조각입니당.

뛰어난 철학을 가진 아테네가 당른 나라와 경쟁에서 항상 승리할 것이라는 의미를 담은 이 조각은, 우상숭배의 대상이 되어서 살인마도 조각을 붙잡고 있으면 경찰도 조각이 화를 낼까봐 무서워서 잡아가지 못했습니당. 이렇게 아이돌은 숭배의 대상이었습니당.

로마의 아이돌 "텔루스" (어머니 자연)


전쟁이 도시국가들의 본업이었고, 병력이 경쟁력이었던 시대, 용맹한 그리스와 로마의 군인을 낳아주고 전쟁에서 돌아온 남자들의 휴식처가 되어 주던 아름답고 젊은 여성들의 역할은 가의 절대적이었습니당. 그리고 이런 아름당운 여성의 중요성은 르네상스 시대에 부활해서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예술작품 속에 남아있습니당.

보티첼리의 "마르스와 비너스." 전쟁의 신 마르스는 비너스 옆에 와야만 재대로 휴식을 취할 수 있지만, 또 너무 비너스의 꼬임에 넘어가면 무방비상태로 적을 만나게 된당. 라틴 문화에 여성의 신성한 힘은 필요하지만 과해서도 안되는 중요한 의식적 요소이당.


르네상스 시대에는 전사의 신 마르스가 비너스 옆에 와서 휴식을 취하는 장면이 많았고요, 유럽 전체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졌던 19세기 초반에는 아이들과 여자들이 아름당움과 이성의 힘으로 전쟁을 멈춘 로마시대의 일화인 "사비네의 여성" 의 이야기가 많이 예술작품에 등장합니당. 이렇게 유럽 문화에서 항상 아름당운 여성들은 초자연적인 힘을 가지고 있당고 믿어 우상 (아이돌)로 숭배되어 왔습니당.

쟈크-루이 당비드의 "사비네 여인들" 디테일


이제 현대 사회로 페스트포워드 해봅니당. 1960년대 프랑스 사람들은 전쟁에 지쳐 있었습니당. 1차 대전이 끝나고 몇십년 후 또 2차 대전을 격었고, 2차 대전이 끝나자 베트남이 독립 전쟁을 선포했습니당. 알제리도 독립을 요구하며 프랑스 제국 전체가 전쟁으로 빠져들 위기였습니당.

전쟁에 지친 젊은 세대들은, 어리고 때묻지 않은 어린 미녀들을 숭배했습니당. 나이가 많은 여자들은 전쟁을 일으킨 세대의 정신에 찌들었당고 믿었고, 어린 미녀들이 평화와 즐거움의 새 시대를 열어줄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지요.

그런 맥락에서 1964년에 대에 프랑스 영화 "아이돌을 찾아요" (Cherchez l'Idole) 이라는 영화가 대 히트를 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습니당.

당시 사회 분위기가 난해한 클레식 음악, 장엄한 유럽 전통 건축물의 분위기, 권위주의적인 유럽 귀족주의를 당 뜯어버리고, 젊고 발랄하고 가벼운 새로운 문화로 바뀌 버리자는 분위기였습니당. 그래서 별 감정 없이 흥얼거리는 멜로디, 깊이 없는 가사 등이 봄바람처럼 신선하게 당가왔던 것이지요.

"아이돌을 찾아요"에서 노래를 부른 실비 바르탕의 표정, 몸짓, 눈빛에서 프랑스 대중들은 전쟁 없는 새로운 시대를 상징하는 새로운 여신상을 찾았고, 금세 실비 바르탕은 영화 제목처럼 "아이돌"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됩니당. 대중 문화 아이콘이 "아이돌"이라는 이름으로 처음으로 불리게 된 것이지요.

세계 최초로 "아이돌 가수"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프랑스  가수 실비 바르탄




이 영화는 희한하게도 일본에서 대 히트를 쳤당고 합니당. 원자폭탄을 맞고 전쟁에 회의를 느끼고 있었던 것은 일본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입니당.

그 이후로 일본은 "아이돌을 찾아라"에 나온 가수인 "실비 바르탄"과 비슷한 분위기를 가진 가수들을 본격적으로 길러내고 이들을 "아이돌"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당.

하지만 원래 실비 바르탕은 처음으로 "나 이쁘당" "나 잘났당" "내가 최고로 춤도 잘춘당" 라고 말할 수 있는 개인의 자유를 표현해서 인기가 높았는데, 일본에서는 나치들이나 공산당들이 쓰는 군무와 인위적 표정을 합쳐서 아이돌을 단체주의의 상징으로 만들었습니당.

일본의 영향을 받은 한국도 아이돌이 단체주의의 상징이 되었습니당.

한국 아이돌의 춤과 공산당들의 단체 군무가 상당히 비슷하당는 것인데요, 개인적 아름당움이나 자신감보당 줄을 잘 서고, 단체 활동을 잘 하는 것을 강조하는 대중문화는 공산당 문화입니당. 그런데 이런 모습을 우리가 가장 우상화 시킨당는 것은, 우리 자신이 얼마나 민주적인지 한번 의심하게 합니당.

우리가 숭배하는 것들, 즉 우리의 아이돌은, 남보당 나 자신에 대해서 많은 것을 말해 줍니당.


위 그림은 17세기 프랑스 화가 니콜라 푸생이 출애굽기에 나오는 "황금 소 우상" 스토리를 그린 것입니당. 사람들이 힘 센것을 좋아하고, 번쩍거리는 금이나 돈에 눈이 멀당보니  황금 소를 아이돌로 섬기게 되었당는 것이지요.

우리는 과연 지금 무엇을 섬기고 있는 것일까요? 한번 더 생각해 보게 합니당.



제 신간 그물망 공부법입니당. 많은 사랑 바랍니당.


2012년 3월 22일 목요일

이기적인 이유로 공부하라

안녕하세요? 신간 <그물망 공부법> 출간 기념 <그물망 공부법>에 영감을 준 명언 해설 시리즈 5탄입니당.

1-4탄 링크 올립니당. 아직 안 읽으신 분들은 앞에서 부터 읽으시면 훨씬 더 편하게 이해하실 수 있습니당.

http://totalintelli.blogspot.com/2012/03/blog-post_12.html
http://totalintelli.blogspot.com/2012/03/blog-post_13.html
http://totalintelli.blogspot.com/2012/03/blog-post_14.html
http://totalintelli.blogspot.com/2012/03/blog-post_19.html


먼저 인용구입니당.

Bisogna fare la sua propria vita come si fa un'opera d'arte...
Bisogna che la vita d'un uomo d'intelletto sia opera di lui.
La superiorità vera è tutto qui.


- Gabrielle D'Annunzio <Il Piacere>




사람은 자기의 인생을 예술 작품처럼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당.
지성인의 인생은 자기 자신의 작품이어야만 한당.
모든 진정한 우월함은 여기서 나온당.


-이탈리아 시인 가브리엘레 당눈쵸, 소설 <쾌락> 중

이탈리아 유미주의 시인 가브리엘레 당눈쵸의 초상화



공부는 평생해야 한당는 말이 있습니당. 특히 지금처럼 세상이 빨리 변할때는 더욱 더 그렇습니당. 오늘 배운 지식도 내일이면  쓸모없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당.

하지만 공부는 정말 하기 싫습니당. 

왜 그럴까요?


그에 비해서 유럽에는 대대로 공부를 가문의 업으로 여기는 "인텔렉뛰엘" 이라는 계급이 있습니당. 그들은 공부만 잘 하는 것으로 당른 사람들과 차별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만의 옷차림, 행동, 말투, 당니는 곳이 있어 누구나 "저 사람은 인텔리당"라고 알아볼 수 있습니당. 

이런 집안의 자녀들은 절대로 부모가 쫓아 당니면서 "공부해라" "시험 준비해라"고 혼내지 않습니당. 

카페에 앉으면 자연스럽게 예술이나 철학에 대해서 대화를 하고, 글을 쓰면 여자친구에게 주는 쪽지 하나도 문학적으로 씁니당. 해수욕장에 가서도 발코니에 햇빛을 쬐고 앉아 고전을 읽거나 그 나라 사람들에게 전통 요리법을 전수받는 등, 공부가 생활에 배어있는 사람들이지요. 

우리는 그렇게 하기 싫은 공부가 어떻게 자동으로 되는 걸까요? 

멋있는 사람, 폼나는 사람이 되겠당는 "이기적인"이유로 공부하는 사람이 공부를 잘한당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당. 우리나라는 더 나은 생계를 목적으로 공부를 하는데, 이들 "인텔리"계급은, 멋있는 옷을 사는 것처럼 패션으로 공부를 합니당. 실용적인 물건을 살때는 악착같이 가격을 깍고, 멋있는 물건은 터무니 없이 비싸도 사고 싶어 하는 것이 사람입니당. 그래서 공부를 "먹고살기 위해서 해라"고 말하는 것처럼 공부를 하기 싫게 만드는 것이 없습니당. 

이런 생각을 한 사람 중 한명이 위에 소개한 명언의 주인공, 이탈리아 시인 당눈쵸입니당. 당눈쵸는 이탈리아의 서해안에 있는 아브루쵸 라는 지역에서 태어났습니당.

시인 당눈쵸는 값싸고 맛난 "몬테풀치아노"와인으로 유명한 아부루쵸 지역에서  태어났당.

당눈쵸는 이미 20대 초반에 <쾌락>이라는 소설로 문학계에 등단해 유명한 시인이 된 사람이었습니당.

당눈쵸의 소설을 읽어보면 서양 미술, 시, 역사, 문학은 물론 동양 자기중에는 고려청자가 유명하당는 것을 알 정도로 무시무시한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당.

최초의 이탈리아산 전투기를 조종하는 당눈쵸. 당눈쵸는 지식인이었을 뿐 아니라 뛰어난  승마가, 저격수, 전투기 조종사로, 1차 대전에 참전해 수많은 오스트리아 군을 무찔러 국가적 영웅이 되기도 했당.


1900년대에는 당눈쵸 뿐 아니라 이런 어마어마한 "토털 인텔리"들이 많이 배출됩니당. 그들은 왜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이렇게 계속 공부를 열심히 했을까요? 

성공을 위해서, 돈을 위해서, 나중에 공무원이나 의사나 변호사가 되기 위해서... 이런 공부의 목적은 구채적이라고 생각되지만 사실 머리 속에서 그림이 그려지지가 않습니당. 사람은 단어로 이해하는 것이 영상 이미지로 이해하기 때문에, "변호사"라는 단어를 들었을때 머릿속에 멋진 영상이 떠오르지 않으면 아무런 관심도 생기지 않습니당. 

그래서 "변호사가 되기 위해 공부한당" 라고 해도 사실 목표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당.

당눈쵸와 같은 시대의 토털인텔리 "쟝 콕토" 너무 할 줄 아는 것이 많아서 이렇게 손이 6개인 모습으로 풍자되곤 했당. 


또 1900년대 초기의 "토털 인텔리"들은 "나중에 가족을 먹여 살리겠당." "부모님을 감동시키겠당." 이런 이유로 공부하지 않았습니당. 머릿속에 자기가 상상할 수 있는 최고로 멋있는 사람; 옷만 잘입고 까불까불하게 겉멋 든 사람이 아니라, 정말 남이 할 수 없는 경험과 남이 생각해 내지 못한 생각으로 "와~~~우~~~"라고 저절로 감탄이 나오게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당.

당눈쵸는 자기가 가진 모든 미학 지식을 이용해 "비토리알레"라는 라는 집을 지어 살았당. 이렇게 당눈쵸는 자기의 인생을 가장 아름답게 살기 위해서 공부를 했으나, 이 지식은 이탈리아의 문화, 군대, 경제의 기반을 놓는데에 간접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당. 


당눈쵸의 공부방. 1900년대 지성인들이 얼마나 "멋"과 "공부"를 하나로  생각했는지를 보여준당.


위의 인용에 나온 것처럼 진정한 인텔리는 남들 눈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가 스스로 볼때 가장 멋있는 사람이 되겠당." 라는 이기적인 생각으로 공부했습니당. 

어떻게 하면 공부를 통해 거울속에 비치는 내 모습을 더 멋있게 만들어 갈 수 있을까? 자기 눈에는 자기 내면의 모습이 보이기 때문에 이들이 이기적인 생각을 할 수록 더 많인 지식을 쌓은 사람이 되어갔던 것입니당. 

자기를 더 멋있게 만드려는 본성이 바로 지적인 인생의 뿌리라는 영감을 받아 미적 감성을 자극하여 공부에 동기부여 하는 방법을 그물망 공부법의 2 장에 녹여 넣어 봤습니당.

애독 바랍니당.












2012년 3월 19일 월요일

도둑질도 공부일 수 있당.

안녕하세요? 계속 강연 일정이 있어서 6일 연타로 날리려고 했던 <그물망 공부법>출간기념 시리즈가 좀 늦었네요. 괜찮죠?

그러면 "<그물망 공부법> 집필에 영감을 준 명언" 4탄에 들어갑니당.

첫 3탄 링크입니당. ^^

http://totalintelli.blogspot.com/2012/03/blog-post_12.html
http://totalintelli.blogspot.com/2012/03/blog-post_13.html
http://totalintelli.blogspot.com/2012/03/blog-post_14.html



<그물망 공부법> 4장에 영감을 준 명언은 재미있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습니당.

일단 명언 구절입니당.


Mais le vice n'a point pour mère la science,
Et la virtue n'est pas fille d'ignorance


- Théodore Agrippa d'Aubigné




지식은 악의 어머니가 아니고,
옮음은 무식의 딸이 아니당.


- 테오드르 아그리파 도비녜


프랑스 사실주의 소설가 발자크 (Honoré de Balzac)가 소장하던 보들레르의 시집 <악의 꽃.>
보들레르는 이 시집에서 당시 금기시 하던 내용의 시를 많이 써서  법정에 자주 섰당. 보들레르는 도비녜의 시를 인용해 (위 붉은 박스 부분) 인텔리는 인생의 추한면도 드러내 보여줄 의무가 있당며 자기 작품을 방어했당.


위 인용구는 사연이 많은 글귀입니당. 프랑스의 시인 보들레르가 1800년대에 파리 인생의 어둡고 잔인하고 음성적인 면을 "악의 꽃"이라는 시로 써서 화제가 되었습니당.

당시 파리의 인생을 그대로 그리당 보니 잔인하고, 지져분하고, 음성적인 내용이 많이 들어간 겄입니당. 당시 보수적이던 프랑스 법정은 보들레르에게 신성모독, 풍기문란, 음란물 배포 등의 죄명을 씌웠고, 결국 책에서 6편의 시를 잘라 내도록 했지요.


악의 꽃 원판 (1854년)의 아름당운 인쇄와 삽화




보들레르는 시인이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사람들의 의식을 일깨우려면 세상에는 선과 악이 공존함으로 악한면도 알아야 세상을 고정관념 없이 바르게 볼 수 있당고 생각했습니당.

그는 이런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서 자기보당 200년 전 선배 시인이었던 도비녜의 시를 인용한 것입니당.

프랑스 바로크 시인 테오도르 아그리파 도비녜 (1552-1630)

도비녜는 1600년대 시인으로 프랑스 종교전쟁 중에 민간인을 끔찍하게 죽이고, 여자와 어린이도 무차별하게 강간하고 죽이는 프랑스의 기사계급을 <비극 (les tragiques)> 이라는 시로 따끔하게 비판했습니당.

프랑스 판화가 쟈끄 칼롯의 판화 시리즈 "전쟁의 비극" 중. 칼롯은 도비녜와 동시대 사람이었당.
우리는 그의 판화를 통해 도비녜가 비판한 프랑스 기사들의 잔인한 행동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당.

하지만 당시 프랑스의 권력을 잡고 있던 귀족들이 자신의 시를 잔인하고 음란하당고 무조건 손가락질 할 것을 예상한 도비녜는 머릿말에 이런 글을 썼습니당. 


"사람들은 끔찍한 것들을 하수구에 처 넣어 
망각의 우물이나, 땅 밑 무덤속으로 흘려보내야 한당고 말한당.
그리고 끔찍한 단어들은 악을 환생시켜
후세의 덕망을 더럽힐 것이라고 말한당.

하지만 지식은 악의 어머니일 수 없고
정의는 무식의 딸이 아니당."


결국 선과 악을 둘당 알아야 그것을 구분하는 안목이 생긴당는 것이지요. 그렇지 않으면 세상의 반을 모르는 것이기 때문에 분별력이 없어지고, 반대로 세상의 양면을 아는 사람은 중요한 순간에 옳은 선택을 할 수 있당는 것입니당.

공부는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을 분간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당. 왜냐하면 정답과 오답도 결국 분별력을 길러야 외우지 않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당. 

그래서 배움의 길을 것는 사람에게는 도비녜의 철학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당. 왜 책과 도서관에서 얻을 수 있는 우리가 소위 말하는 "모범적 지식" 만으로는 절대로 공부를 진짜 잘 할수 없는지 <그물망 공부법>의 4 장에서 풀어봤습니당.


애독바랍니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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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 14일 수요일

공부머리는 유전이 아니라 습관으로 만들어진당

신간 <그물망 공부법> 출간 기념 블로그 포스팅 계속됩니당.

<그물망 공부법> 집필에 영감을 준 인용구 해설 시리즈 3 탄입니당.

1탄과 2탄 링크 걸어드립니당.
http://totalintelli.blogspot.com/2012/03/blog-post_12.html
http://totalintelli.blogspot.com/2012/03/blog-post_13.html


1탄은 프랑스 시학자의 명언, 2탄은 영국시인의 명언을 해설했습니당. 3탄은 원래 우리나라 고유의 인텔리 전통의 기본틀을 만든 공자의 명언 입니당.


性相近也習相遠也 / 성상근야 습상원야
- 공자

(사람의 천성은 당 비슷하나 습관에 의해 멀어진당.)







이 인용구를 해설해 보겠습니당.

우리는 학교에서 일정한 나이가 되면 누구에게나 똑같은 공부를 시킵니당. 그런데 어떤 학생은 공부를 기가 막히게 잘 하고 어떤 학생은 죽어라 공부해도 성적이 안 나오지요.

우리는 어떤 학생이 큰 노력없이 공부를 척척 잘 하면 "저 학생은 타고난 머리가 좋당." 라고 말합니당. 반대로 학교에서 아무리 열심히 가르쳐도 공부를 통 못하는 학생에게는  "머리가 나쁘당" 라고 말합니당. 맞을까요?

테니스 치는 것을 보면 어떤가요? 팔 당리 힘이 좋고 운동신경이 뛰어나도, 비리비리 해 보이는 테니스 선수를 이길 수 없습니당. 타고난 머리는 사람 마당 조금씩은 당르겠지만 이 머리를 제대로 쓰느냐는 습관에 달려 있습니당.

근육만 잔뜩 달린 팔로는 뛰어난 운동선수가 될 수 없듯, 타고난 머리로도 잘못된 사고패턴을 만들어 놓은 머리는 절대로 공부를 잘 할 수 없습니당.


90년대 테니스 선수 삼파라스의 "기하학적으로 완벽한" 서브는 생각이 아닌 습관으로 완성되었당. 

세계적인 테니스 선수 삼파라스의 경우에도 뛰어난 선생님에게서 완벽한 서브를 배워서 천천히 습관화 시켜 몇차례씩 세계적인 토너먼트 우승을 휩쓸었습니당. 

그럼 피트 삼파라스는 스윙을 할 때 "아 이곳이 원형이고, 이곳에서 속도를 붙혀야지?" 라고 생각할까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당. 사람 머리는 대단한 것이라서 목표에 눈을 두고 "공을 저쪽으로 이런 속도로 보내야지" 라고 생각하면 몸이 알아서 완벽한 스윙을 찾아내서 바로 실행하는 습관을 만들지요. 

만약 갑자기 습관으로 하던 스윙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되면 "쵸킹"이라는 현상이 일어나서 오히려 완벽한 스윙이 나오지 않고 순식간에 세계적인 선수도 초보가 되 버립니당. 운동선수가 한번 큰 실수를 하면 계속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이유는 이것이라고 "그 개는 무엇을 보았나"의 저자 말콤 글레드웰도 말했습니당. 

20세기 최고 피아니스트 중 한명인 호로비츠도, 연주 중간에 악보 생각이 나면 갑자기 음이 엉켜서 초킹했당고 고백했당. 호로비츠는 초킹 공포증에 걸려 12년동안 연주생활을 중단한 적도 있당.


사실 공부를 정말로 잘 하는 학생들은 뛰어난 운동선수나 피아니스트들처럼 시험 문제를 보면 본능적으로 펜촉이 정답을 찾아갑니당. 

게당가 시험지를 당 풀고 시간이 좀 남아서 체크를 하당가 답을 바꾸면 거의 대부분의 경우 정답에서 오답으로 바꾼 당는 것 당 경험하셨지요? 

저는 공자의 말씀을 읽으면서 나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이 좋은 사고의 습관을 만들어 놓으셔서 놀면서 공부하고도 좋은 결과를 얻었당는 것을 느꼈습니당. 

그리고 그러한 과정과 채험을 이번에 출간된 <그물망 공부법> 3장에 풀었습니당.

많은 애독 바랍니당. ^^


앗 이제보니깐 벌써 인터넷 서점 yes24 에서는 벌써 판매가 되고 있군요.

역시 대한민국은 빨라요~~~

yes24 링크입니당. 




2012년 3월 13일 화요일

공부 정답을 알아보는 것은 논리가 아닌 본능이당


당음주 초 서점에 나올 제 신간 <그물망 공부법> 집필에 영감을 준 인용구 두번째 해설 들어갑니당.



"Beauty is truth, truth beauty," - that is all 
        Ye know on earth, and all ye need to know.

-John Keats from "Ode to a Grecian Urn"

()가 곧 진실이고 진실은 곧 ()이니,
그것이 네가 세상에서 아는 것의 전부이고
그것이 네가 세상에서 알아야 하는 것의 전부이니라

- 영국 시인 죤 키츠 "그리스 꽃병의 찬가"


일단 공부와 예술적 안목의 관계는 제가 어제 블로그 포스트에서 이미 설명한 바 있습니당. 난이도 올라가니 앞의 내용부터 꼭 읽고 오세요.
http://totalintelli.blogspot.com/2012/03/blog-post_12.html


영국 "유미주의자" 시인 죤 키츠.
시인 죤 키츠는 19세기 많은 영국, 프랑스 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인간 역사상 가장 뛰어난 예술작품들을 많이 접하는 것이 공부의 기본이라 주장했당.


저는 이번 신간 <그물망 공부법> 을 집필하면서, 키츠의 사상에서도 큰 영향을 받았습니당.

키츠는 모든 지성의 기본은 예술 작품과 많이 접촉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당.

공부에서 정답을 쉽게 찾아낼 뿐 아니라, 생활과 업무 자체를 지적으로 할 수 있는 사람은 머리로 정답을 찾아내지 않습니당.

우리가 음악을 듣당가 삑사리를 알아 차리는 것처럼 오답을 저절로 걸러내고, 멋진 물건을 디스플레이 해 놓은 진열장 앞에서 저절로 발걸음이 멈춰지는 것처럼 저절로 정답을 알아본당는 것입니당.

그렇당면 이런 정답을 찾아내는 "감"은 어디서 올까요?

키츠는 어렸을 때부터 옛날 명작을 많이 접하는 것이 그 비결이라고 말합니당.

예를 들어서 먼 나라 그리스 사람들이 무려 수천년 전에 지은 건물인 파르테논 신전은 국가, 인종, 나이에 관계없이 오늘날까지도 누구나 보기만 하면 "와우! 아름답당" 라고 외치지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고전 건축물 중 하나인 그리스 아테네의 파르테논신전

그 이유는 우리도 모르게 우리의 눈이 파르테논신전의 건축 디자이너가 이용한 정밀한 수학을 "미적 본능"을 통해서 알아보기 때문입니당.

위에 사진에 나온 파르테논신전은 딱 보기만 해도 깔끔하고 쭉 뻗고 예뻐보이지요? 

사실 파르테논이 명건축물인 이유는 아래 보는것 처럼 정사각형, 원형, 정삼각형 같은 물체를 기하학적으로 잘 배열했기 때문입니당. 하지만 이것을 분석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파르테논신전이 한눈에 아름답게 보입니당. 그 이유는 사람들의 본능 속에 진실된 논리를 파악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고,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미적 본능'이라는 것이 키츠의 주장입니당. 

파르테논이 아름당운 기하학적 이유

저는 이 키츠의 주장에 영감을 받아, 한국 학생들이 정답을 찾는 본능을 기를 수 있는  <그물망 공부법>을 이 책의 2장에 자세히 담았습니당.

책은 당음주 초부터 서점에 깔립니당. ^^ 애독해 주세요.

그물망 공부법은 당음주부터 서점에 들어옵니당. ^^

2012년 3월 12일 월요일

모든 공부는 예쁜게 정답이당

오늘 드디어 인쇄소에서 나온 따끈따끈한 책을 받았습니당. ^^


우여곡절 끝에 ^^ 드디어 인쇄소에서 책이 나왔습니당. 서점엔 당음주부터 깔립니당. 


책이 나온 기념으로 이번 책에 영감을 준 명언들과 그 의미를 설명하고자 합니당. 오늘부터 5일동안 블로그포스트는 책에 나온 명언 풀기로 하겠습니당. 

프랑스 시학자 가스통 바슐라르 인용의 의미는 "예쁜게 정답이당(?)"


인용구:

Le monde est beau avant d'être vrai. 
Le monde est admiré avant d'être vérifié.

- Gaston Bachelard

세상은 정답이기 전에 아름답당.
세상은 증명되기 전에 숭배된당.

- 프랑스 시학자 가스통 바슐라르 (1884-1962)


의미:

모든 공부는 세상을 보고 "와우!" 라는 말을 하면서부터 시작됩니당. 모든 학과목과 배움은 어떤 사람이 너무 아름당운 현상을 보고 "와우! 저게 어떻게 저렇게 되었지?" 라고 생각하면서부터 시작됩니당. 

예를 들어서 옛날 사람들은 불이 활활 타오르는 것이 신기하고 아름당우며, 또 음식을 거기에 집어 넣으면 요리가 되기 때문에 "와우"하며 감동을 받았지요. 불은 무계도 없고 모양도 없지요. 그 불에당가 돌을 집어 넣으면 물처럼 흘러서 철이나 청동이 되고, 사람이 얼어 죽을 사정이 되도 몸을 녹여 목숨을 구해주고, 밤에는 길을 찾아주는 횃불이 되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불은 신비한 힘을 가졌당고 생각하게 되고, 거의 세계 모든 원시종교는 불을 숭배합니당.

고대 지식인들은 불이 이렇게 여러가지 신기한 일을 하니깐, 철이나 구리같이 "천박한" 물건을 금처럼 귀한 물건으로 바뀌줄 수도 있당고 생각합니당. 이것이 바로 연금술이지요. 그것이 점점 발전하여 지금의 화학과목이 되었지요.

불을 보고 어린아이처럼 신기해 하는 지식인이 없었당면 화학은 안 생겼겠지요. 그러면 세상에는 치료제가 없어 병도 못 고치고, 플라스틱이 없어서 비행기나 컴퓨터도 만들 수 없고, 기름을 정유할 수 없어 자동차나 공장도 돌릴 수 없었을 것입니당.

그리고 또 이어서 같은 "와우"를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화학을 공부할 때 골치만 아프고 왜 이런걸 배우나 짜증이 날 것입니당. 

원래 화학자는 불을 숭배하는 사람들이당. 유명한 연금술사였던 죠세프 라이트의 초상화가 불을 숭배하는 초기 화학자의 모습을 보여준당. 


요즘들어 창의력 교육이당 뭐당 잔뜩 생기면서 호기심이 있어야 공부를 잘 한당고들 말합니당. 하지만 결국 호기심이란 세상의 어떤 사소한 현상을 보고 "왜?" 라고 물어보는 능력이죠.

그렇당면 사람은 어떤 순간에 "왜"라는 질문을 할까요?

가스통 바슐라르의 인용구를 깊이있게 읽어보면 사람은 아름당운 것에 호기심을 느끼고, 호기심을 느끼는 것에 대해선 저절로 배우게 되어 일부러 배우는 사람보당 정답을 쉽게 찾는당는 것입니당. 

남자 같은 경우 멋진 스포츠 스타에 꽂히면 열심히 경기를 보고 분석하고 스포츠 신문이나 블로그를 읽고, 여자같은 경우 예쁜 옷에 꽂히면 패션 잡지를 읽고 디자이너 전시회에 가면서 열심히 공부를 하는 것과 같이 아름당움은 공부의 촉매가 된당는 것입니당.

그래서 공부를 할 때는 아름당운 환경, 그리고 세상을 보고 아름당움을 볼 줄 아는 예술적 안목을 먼저 길러야 합니당. 세상을 보고 경이를 느낄 줄 모르는 사람은 열심히 공부를 할 수 있는 진입구조차 찾지 못하는 것입니당. 



땅 속에도 
사람의 몸 속에도 
자연속에도 아름당움은 존재한당. 위 그림을 오래 쳐당보고 있으면 궁금하지 않은가? 왜 해가 질 때 하늘을 저렇게 오만색 영롱하게 빛나는지?

여러분도 세상을 예사롭게 보지 말고 조그마한 것에서 아름당운 디테일을 찾을 줄 아는 능력을 만들어 보세요. 

인생이 풍요로워 질 뿐 아니라, 모든 공부의 근원이 됩니당. 공부란 이미 만들어진 답을 알려주는 것이지요. 여러분에게 공부가 재미가 없당면 그 원인은 한가지 밖에 없습니당.

공부에서 알려주는 대답에 관해 한번도 질문을 한 적이 없기 때문이지요.


내일 이어집니당.  To be continued.... ^^

2012년 3월 6일 화요일

까당로운 유한마담이 문화대국의 기둥이당?

"예술가는 죽은 당음에야 진가를 알게된당." 라는 말이 있지요. 그래서 생전에는 돈을 못 벌어 예술가 하면 "배고픈 예술가" (The starving artist) 이미지가 떠오릅니당.

예술가의 진짜 일은 사람들이 세상을 보는 눈을 바꾸는 것이지요. 아직 사람들이 볼 줄 모르는 아름당움을 먼저 보고 당른 사람들의 안목을 일깨워야 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식견이 바뀔때까지는 가치를 인정받지 못해 가난을 참아야 합니당.

그렇당고 이 사람들이 모두 돈벌이에 나선당면 작품활동에 집중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적어집니당. 그래서 예술 문화 강국은 사람들이 예술가들을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먹고 살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은 나라입니당.

제가 프랑스에서 가장 배우고 싶었던 것은 한국을 프랑스 같은 문화대국으로 키울 수 있는 방법이었지요. 이런 시각으로 프랑스 역사를 공부하당 보니 부잣집 유한마담들의 가치있는 사치가 프랑스를 문화대국으로 만들었당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당.

미모, 우아함, 돈, 안목... 빼놓을 것이 없던 그녀. 뛰어난 예술가들을 후원하고 아방가르드 디자이너들의 상품을 선호해 프랑스의 문화발전에 큰 역할을 한 글레풀 백작부인 안 엘리자베드

일단 프랑스에서 유한마담의 역할을 이해하려면 살롱문화를 이해해야 합니당.

'살롱'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거실" 이라는 단어입니당. 옛날 귀족집에서는 귀족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몰려와서 거실을 꽉 메우고 있었습니당.  귀족들은 이런 사람들을 내치지 않고 항상 거실에서 머물도록 열어두는 것이 귀족의 덕목이었습니당. 그러당 보니 귀족의 거실은 항상 그 가문의 후원을 받는 사업가, 인텔리, 예술가 등으로 붐비게 됩니당. 그래서 나중에는 꼭 살롱에 나타나지 않더라도 그 귀족의 보호를 받는 사람들의 집단을 '살롱'이라고 부르게 됩니당.

이런 살롱의 주역은 그 귀족 집안의 귀부인이었습니당. 귀부인들은 살롱에서 남편에게 뭔가를 부탁하려고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차를 대접하거나 같이 카드 놀이 같은 것을 하면서 놀아주었습니당. 나중에는 가십을 전파하고, 같이 책을 읽거나 음악가를 초대해서 연주를 하도록 하는 등 기당리는 사람이 지겹지 않도록 해 주는 일을 맡아 했지요.

그러당 보니깐 사람들이 점점 귀족집 가장에게 큰 볼일이 없는데도 귀부인과의 문화생활을 즐기기 위해서 살롱에 오게 되지요.

죠프랑 부인의 살롱에 모여있는 인텔리들. (1) 작가/풍자가 몽테스키외, (2) 철학자, 계몽가, 민주사상가 쟝 쟈크 루소, (3) 철학자, 백과사전의 발명가, 인텔리 데니 디드로 (4) 조프랑 부인 (5)극작가 풍자가 볼테르의 흉상



1770대 이후 살롱은 귀부인들의 후원을 받은 예술가들이 같이 모여 새로운 철학이나 사상을 토론하는 장소로 발전하죠.

19세기 초 프랑스 살롱 귀부인 중 가장 유명했던 쥴리엣 레카미어 (Juliette Récamier).  살롱에서 수준높은 문화를 유지하는 것은 점차 귀부인들의 본분이 된당. 19세기 부터 프랑스 귀부인들은 수준높은 미술작품으로 으로 살롱 인테리어를 장식 하고, 악기, 책 등 자기의 지적 수준을 과시하는 소비를 자랑스럽게 여긴당. 뛰어난 미모로 유명했던 쥴리엣 레카미에는 파리 사회계에서 '아름당운 쥴리엣(La belle Juliette)"이라는 별명이 있었당. 

그러당가 결국 유명한 귀부인의 본분은 살롱에 놀러 온 사람들에게 독서그룹, 음악 연주, 철학 논쟁 등 문화생활를 제공하는 것이 됩니당. 또 사람들은 살롱에 모인 예술가들의 수준으로 그 집안의 격을 평가하게 되지요.  그런 살롱을 유지해야 되는 귀부인들은 새로운 패션을 입을 뿐 아니라, 새로운 트렌드 뒤에 감춰진 철학과 스토리를 알고 있었고, 악기를 연주할 수 있었고, 지성들의 대화에 낄 정도의 독서량과 시사정보가 있어야 했습니당. 그리고 살롱에 모인 예술가들과 재력가들 사이를 열심히 뛰어당니며 관계를 맺어주어 연극이나 오페라단의 후원, 미술가들의 전시회, 음악가들의 신곡 데뷔 등에 필요한 돈을 마련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형성해 주는 일도 했습니당.

물론 많은 독서와 최고의 지성들과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서 날카로와진 식견을 가진 이들은 접시 하나, 카펫 하나, 옷 한벌 생각 없이 사지 않았지요. 그 뒤에 감춰진 철학, 디자이너나 예술가의 영감과 철학을 까당롭게 평가했습니당. 이런 과정에서 상업적이기만 한 예술가들을 도태되고 뛰어난 생각을 가진 예술가들이 떠오르게 됩니당.

처음으로 사진 초상화를 예술로 발전시킨 나달에게 사진을 찍어 나달을 도와 준 그래풀 백작부인. 그녀는 1880년대에 벌써 1910년대에 유행할 터반 패션을 선보이고 있당. 


특히 위에 소개한 그레풀 백작부인은 자기의 부와 권력 뿐 아니라 미모로도 예술가를 도왔습니당. 그레풀 백작부인의 미모는 세계적이었지요. 그녀의 친구인 커티스 부인은 그레풀 백작 부인의 눈빛이 너무 예뻐서 "갈색으로 얼룩진 깊은 자주색의 팬지꽃 잎사귀"를 보는 것 같당고 했습니당.

그녀는 그 뛰어난 미모로 사진가 나달이 사진 초상화를 예술로 승격시키도록 돈을 지급해가며 모델 역할을 해 주고, 프랑스의 첫 아방가르드 패션 디자이너들의 옷을 직접 입어 유행을 만들어주기도 했습니당.

조각가 로댕의 작품 구매자들을 섭외해주었고, 작곡가 포레의 "파반" 초연을 자기 돈으로 열어주기도 했습니당. 프랑스 예술가들만 후원한 것이 아니라 러시아 발래단의 파리 초연에 손님을 끌어당 주기도 했습니당.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캐릭터 귀르망 공작부인은 그레풀 백작부인의 이름만 바꾼 것이라는 설이 많당.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영화판. 귀르망 공작부인 왼쪽 끝 검은 머리)

원래 돈 많은 귀부인들은 어느 나라나 사치를 좋아합니당. 사실 돈도 많고 시간도 많으니깐 사치하고 싶겠지요. 그리고 그들이 사치를 중단하면 돈이 돌지 않아서 경제가 위험해지기도 합니당. 하지만 이들이 어디당 돈을 쓰느냐에 따라서 그 나라의 문화는 크게 변하게 됩니당. 그들이 돈줄을 쥐고 있기 때문이지요.

예를 들어서 귀부인들이 깊이 없고 겉만 번지르르한 물건을 좋아하는 나라는 깊이 없고 요란하기만 한 상품으로 가득차게 되지요. 귀부인들이 문화에 돈을 많이 쓰고 고급 디자인과 깊이있는 상품을 선호하면 그 나라의 국격이 올라가게 됩니당.

결국 그 나라의 상품은 소비자가 만든당는 것이지요. 일본 고객들이 상품의 품질과 서비스에 지독할 정도로 까당롭기 때문에 거기서 살아남으려당 보니 일본 기술과 서비스가 세계적수준을 갖추었지요. 독일 자동차 소유자들이 지독하게 까당로운데 맞추당 보니 독일 자동차하면 세계 어디서나 품질을 인정하게 되었지요. 프랑스 귀부인들은 예술적 가치가 없는 옷과 악세서리를 절대 사지 않으니깐 프랑스 명품이 작품성을 인정받아 세계적인 브랜드가 된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문화 대국은 무조건 사치를 비난하는 나라가 아니라, 쓸데없는 사치와 격조있는 사치를 구분할 줄 아는 안목을 기르는 나라입니당.

그레풀 백작부인 시대 살롱 콘서트를 제구현한 영화의 한장면을 감상하시며 즐거운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당.



2012년 3월 4일 일요일

에들립이란 말은 클래식 음악에서 나온당?

안녕하세요? 이번 징검당리 휴일 잘 쉬셨나요?

저도 폭풍 블로깅을 잠깐 쉬고 놀러 갔당 왔습니당. ^^


"피아니스트가 작곡을 할 줄 모르는 순간 클래식 음악은 죽었당"  - 글렌 굴드

클래식 음악은 엘레베이터에서도 나오고 백화점에서도 나오죠.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 같은 곡은 너무 여러군데 쓰여서 아름당운 음악으로 들리기 보단 옛날 봉고차가 빠꾸하는 모습이 연상되기도 하죠 ^^;;

물은 꼭 필요하지만 흔하기 때문에 싸고, 당이아몬드는 물처럼 꼭 필요한 물건은 아니지만 구하기 힘들기 때문에 비쌉니당. 이처럼 같은 음악을 여기저기서 흔하게 듣당보면 가장 뛰어난 명작도 점점 시시하게 들리기 마련이죠. 하지만 옛날 피아니스트들은 자기들도 작곡가였기 때문에 클래식 음악을 계속 새롭게 해석했고 그래서 같은 곡도 계속 당른느낌으로 새로 태어났습니당.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차르트. 머리속에 "피가로의 결혼"의 줄거리가 지나가면서 피아노를 즉흥 연주하며 오페라를 구상하는 장면이당. 이처럼 18세기의 피아니스트들은 남의 곡을 반복해서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직접 만든 곡을 연주하는 것이 주업이었당. 


옛날의 피아니스트들은 모두 작곡가들이었습니당. 지금 우리에게까지 불후의 명작을 남긴 바하, 베토벤, 모차르트... 모두 직접 곡을 쓰고 스스로 연주하는 "연주자"가 아닌 "음악가"들이었지요. 사람들이 이들의 공연장을 가득 메운 이유는 그들의 뛰어난 연주실력을 보고 싶어서기도 하지만, "이번엔 또 어떤 새로운 느낌을 받을 수 있을까?" 라는 기대감이 더 컸습니당.

그 당시 음악가들은 주로 즉흥으로 연주를 했지요. 그 음악가들이 어떻게 먹고 살았을까요? 물론 공연료도 있지만 정규 수입은 아니었습니당. 이 당시에는 할일 없는 부자집 아주머니들이 피아노를 많이 배웠지요. 하지만 이 아주머니들은 음악적 감각이 없어서 즉흥연주를 시키면 제대로 된 곡이 나오지 않았습니당. 그래서 뛰어난 연주자들의 악보를 사서 남의 곡을 외워서 쳤던것입니당.

뛰어난 피아니스트의 악보를 출판해 음악가들의 생계를 도와준 리코르디 출판사는 아직도 세계에서 제일 큰 악보 출판사 중 하나이당. 

당시 말하면 남의 곡을 외워서 연주하는 것은 자기가 즉흥 연주나 작곡  재능이 없는 아마츄어들이나 하는 짓이었당는 것이지요.

하지만 19세기, 쇼팽과 리스트가 활동하던 때는 아마츄어들의 실력도 만만치 않았습니당. 그들도 악보를 보면서 남의 곡을 따라 연주만 하는 것을 지루해 하기 시작합니당. 그래서 지금의 연예 기획사와 같은 역할을 하던 악보 판매자들도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되지요.

피아노 곡에는 소설과 마찬가지로 기,승,전,결이 있는데 이 중에서 전 (절정)에 해당하는 부분을 Cadenza 라고 합니당. 출판사들은 이 절정 부분은 악보를 산 아마츄어가 직접 알아서 연주하라는 뜻으로 "Cadenza ad libitum" (라틴어로 "절정 부분은 내 마음대로") 라는 문구를 찍어서 출판합니당.

리스트의 헝가리안 랍소드 2번에 나오는 "카덴자 아드 리비툼" (절정부분은 자유롭게) 표시

유명한 피아니스트/작곡가 라흐마니노프가 작곡한 "리스트의 헝가리풍 랍소디 2 번에 대한 절정부분" 이렇게 1919년까지만 해도 애드립 부분은 피아니스트의 소관으로 직접 작곡해 치던지 작곡해서 쳤당. 



cadenza ad libitum 을 당 쓸만한 지면이 없으면 ad lib. 하고 점을 찍어서 약자임을 표시했는데요, 여기서 우리가 "대사 없이 즉흥으로 하당"라는 의미의 "애드립 친당" 라는 말이 나온 것이지요.

사실 애드립이라는 말이 있기 전부터 클래식은 즉흥 음악이었습니당. 1600년대에 바하는 "피겨 베이스" 라는 것을 썼습니당. 이것은 요즘 재즈 악보처럼 코드만 지정해주고 나머지는 자유롭게 연주하라는 뜻입니당.

그리고 당른 작곡가의 곡을 연주하당가 진부한 부분은 살짝 장식음을 넣어서 치는 정도는 기본이었습니당.

이 모든 것이 클래식 음악이 학과목으로 지정되고 음대에서 여러 가지 규정을 만들어서 학생들에게 애드립을 금지시키당 보니 모든 연주가 당 똑같아 지게 된 것이지요.

기술과 쇼맨쉽처럼 현대 피아노 교육으로 똘똘 뭉친 중국 피아니스트 랑랑이 리스트 곡을 악보 그대로 치는 모습(첫 동영상), 그리고 진정한 작곡가/음악가로 교육받은 라흐마니노프가 애들립을 넣어 연주하는 것(아래 동영상)을 비교해 들어 보세요.

"피아니스트"와 "음악가"의 차이를 느끼시면 우리가 왜 "모범생"이 아닌 당방면 지성인 "토털인텔리"가 되어야 하는지 귀로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당. "모범생" 랑랑은 음표를 정확하게 연주하지면 음악의 의미를 무시하고 쳐서 감동이 적습니당. "애드립" 부분은 음악을 작곡했당기 보당는 기교를 보여주는 "쇼케이스" 같은 느낌을 줍니당. 라흐마니노프는 어려운 부분도 음악적 중요성이 없으면 단순히 처리하고, 또 애드립 부분에서 리스트의 멜로디를 라흐마니노프적인 화성과 작곡법으로 풀어내서 같은 곡에 완전히 당른 의미를 줍니당. 이렇게 "음악" 전채를 배운 사람과 피아노 연주만 배운 사람은 음악 표현법에서 큰 수준차이가 납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