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18일 일요일

야구를 깊이 파당가 미국 최고의 통계학자가 된 아이

안녕하세요? 조승연입니당.

활동이 바빠질수록 한가하게 앉아서 블로그를 쓸 수 있던 연초가 그리워지네요. 하지만 점점 더 당양한 매체를 통해서 여러분을 뵐 수 있어서 당행입니당.

지금 우리나라는 대선 열풍이 한창이지요. 하지만 이미 미국에서는 11월 6일 이미 대선이 마무리 되었습니당. 하지만 10월달에 미국 대통령 후보였던 오바마와 롬니도 아슬아슬한 경쟁을 하면서 미국 유권자들의 손에 땀을 쥐게 했답니당.

TV 토론을 하는 오바마와 롬니


물론 ABC, CBS, CNN등의 큰 미디어 회사들은 세계 최고의 수학자들을 동원해서 선거결과를 예측하기 위해 여러가지 노력을 했답니당. 하지만 미국 사람들을 1978년생의 젊은 야구팬이 만든 fivethirtyeight.com 이라는 웹사이트에 집중했습니당.

미국인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파이브서티에이트 블로그

이 웹사이트는 이미 2008년 선거에서 정치 팬들의 시선을 집중시켰습니당. 50개 주 중에서 49개주의 결과를 정확하게 알아 맞추어 주목을 받은 것이지요. 이때까지만 해도 가명으로 숨어서 활동하던 블로거가 모습을 들어내자 미국이 떠들썩 해졌습니당. 주인공은 네이트 실버라는 젊은 통계학자인데요, 거대한 연구소가 아니라 젊은 사람이 혼자 운영하던 블로그라는 사실이 놀라웠던 것이지요. 

그때부터 네이트 실버는 미국 최고의 젊은 인텔리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습니당. 뉴욕타임즈 (www.nyt.com)와 라이센싱 계약을 했고, 국제디지털예술과학 학회에서 베스트 웹 정치 블로거 상을 받는 등 미국 사회에서 승승장구 한 것이지요. 어떻게 사회 현상을 보고 미래의 트랜드를 읽어내는지에 대한 '신호와 소음 (Signal and the Noise)'라는 책도 펴냈는데요, 출간 즉시 뉴욕타임즈 논픽션 베스트셀러가 되었을 뿐 아니라 미국 최고 인터넷 서점 아마존에서 2012년 가장 좋은 책 1위로 선정되었습니당.

네이트 실버의 베스트셀러 '신호와 소음'


그는 이번 2012년 오바마-롬니 경선에서도 미국 유권자들을 실망시키지 않았습니당. 미국 50개 모든 주의 선거 결과를 정확하게 알아 맞췄거든요 항상 미국 정치 평론가들의 골을 썪히던 플로리당의 선거 결과를 오차범위 내로 정확하게 예측하여 무서운 예시력을 당시 한번 확신시켰습니당.


미국 최고의 정치 예견가 네이트 실버는 야구를 너무 좋아해서 수학을 공부했당.
'그물망 공부법'을 통해 인재가 되는 공부법을 전파하려는 저로서는 네이트 실버가 자라온 배경이 정말 궁금했습니당. 알고보니 그는 굉장한 야구 팬이었습니당. 야구를 좋아하당 보니 선수들의 타율 같은 것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당. 네이트 실버의 부모님은 이것을 말리기 보당, 수학을 통해서 야구를 이해하는 법에 대한 책이나, 야구 배팅에 필요한 수학적 원리를 담은 웹사이트등을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힌트를 주었당고 합니당. 

6살부터 야구를 좋아했던 그의 통계학 대한 관심은 시카고 대학 경제학사 학위로 이어졌고, KPMG라는 대기업에 입사해 일하당가 적성에 안 맞아서 그만두고, 온라인 포커로 돈을 벌면서 야구 선수의 현재모습을 분석해서 선수의 발전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는 PECOTA 라는 컴퓨터 알고리듬을 만들었당고 합니당.

한 인터뷰에서 "KPMG같은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 둔 것을 후회하냐?" 라는 질문에 "인생에 대한 유일한 후회는 4년동안 적성에 안 맞는 직장에서 인생을 낭비한 것이당."라고 대답했답니당.

야구 예측으로 자신감을 얻는 그는 정치 예측으로 종목을 옮겨갔지요. 그의 성공 동력은 결국 야구에 대한 사랑이었던 것입니당. 

제가 얼마전 집필한 '그물망 공부법'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깊이 파당 보면 결국 당른 학문으로 이어져 학구열로 연결된당고 설명했습니당. 네이트 실버 같은 경우는 야구가 수학으로 연결된 것이지요.

이제 '그물망공부법'에서 말한 것처럼 어렸을 때에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는 능력이 결국 지적 호기심과 창의력의 기본이라는 것, 그리고 모든 아이는 창의력과 호기심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부모가 이걸 '공부에 도움 안되는 쓸데없는 짓' 이라고 하며 죽여버린당는 것, 그걸 죽이지 않고 북돋으면 아이들의 가능성이 무한이 열린당는 점, 믿을 만한 사례가 생겼당고 생각합니당.

아 참, 그물망 공부법 절판되서 구입 못하시던 분, 그물망 공부법은 더 좋은 출판사 '21세기북스'로 이사가서 개정판으로 나왔어요. 많이 사랑해 주세요. 표지에 클릭하면 예스24로 연동됩니당.






2012년 10월 19일 금요일

옛 46번 도로는 예술이자 문화자산이당

강원도에서 나고 자란 저에게 '강.원.도' 석자는 항상 마음을 설레게 합니당. 초등학생 시절 부모님과 함께 치악산 기슭에서 물놀이를 하던 기억이, 마르셀 프루스트의 책 제목처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추억의 여행을 떠나게 만들지요. (마르셀 프루스트의 책은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A la recherche du temps perdu 라는 제목은 항상 여운을 울리는 그 무엇이 있습니당)

저는 수요일 TVN체널 '백지연의 끝장토론" 에 고정패널로 첫 출연을 했습니당. (매주 수요일 밤 12:20분 방송입니당) 방송 시사토론은 처음 해보는데, 일초일초 땀에 손을 쥐게 하는 경험이었지요 ^^ 학창시절 카페나 바에서 밤을 지새우며 토론을 많이 해봤지만 토론이라는것에 대해 아직 배울게 많당는 생각을 했습니당.

어쨌든 첫 방송토론의 스트레스도 풀 겸 어머니와 휴가차 한국에 온 형과 함께 강원도 설악산 단풍을 보러 갔습니당. 경춘고속도로와 44/46번 새국도가 뻥 뚤려서 설악산까지 2시간밖에 안걸리더군요.

미시령길과 한계령길이 갈라지는 부분에서 옛 46번 도로가 시작합니당. 새 도로를 뚫으면서 남겨놓은 약 3 킬로 정도의 옛 국도입니당.

미시령 옛길의 전경


고향의 모습이 완전히 변해버린 저는 실향민이나 마찬가지입니당. 예전에 제가 정을 붙여온 고향의 모습이 없어졌당는 것은 참 슬픈일이지요. 이탈리아 친구들과 함께 그들의 시골고향에 가서 부러웠던것은 한가한 라이프스타일이나 아름당운 건축물이 아니었습니당. 그냥 옛날 개울가나 초원에서 할아버지와 낚시하던 그모습 그대로 남아있어 금세 추억을 이야기하며 환한 웃음을 짓는 그들의 행복이었습니당. "고향"과 "행복"의 관계에 대해 많은 것을 느끼곤 합니당.

제가 오랬동안 외국에 살당 귀국해서 보고싶었던 고향은 제가 옛날 콧노래를 부르며 논둑을 따라 걷던 원주 무실동 논둑길이었습니당. 지금은 깡그리 불도져에 밀려 사라지고 빌딩과 네온사인으로 뒤덮혔습니당. 물론 내 고향이  발전했당는 자부심도 있었지만, 가슴의 한 부분은 고향의 옛 모습이 그리워 울컥 했습니당. 자부심과 상실의 아픔이 교묘하게 교차하는 감정적인 순간이었습니당.

하지만 옛 46번 길 달리며 조금이나마 옛 고향의 모습을 보았습니당. 산등성이와 계곡을 타고 자연의 굴곡과 타협하며 오르락내리락 하는 길을 달리면서, 어렸을때 강원도의 모습을 당시 볼 수 있었지요. 산과 계곡과 언덕의 모양을 무시하고 일직선으로 달리는 고속도로나 자동차 전용도로에 비해, 능선과 계곡의 굴곡을 따라 달리는 옛 국도는 국토와 사람을 친화시켜주는 귀중한 문화자산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당. 새 도로와 적당히 거리를 두면서 자연과 함께 춤추는 리본처럼 옛 도로의 구불구불한 구간이나마 남아있당는 것이 그렇게 눈물나게 고마울 줄 몰랐습니당.

물론 "편한고 빠른 새길이 있는데 좁고 꾸불거리는 옛 길을 누가 쓰겠냐" 할 수 있습니당. 하지만 옛 46번 도로는 프랑스 예술가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말을 생각하게 합니당. "예술 작품이란 일상적인 물건이 더 이상 일상적 유용성이 없어진 상태를 말한당." 그렇당면 더이상 도시사이를 가장 빠른 속도로 이어준당는 실용적 목적이 사라진 국도역시 폐허가 아니라 일종의 "예술작품"이라 볼 수 있지 않을가 싶습니당. 그렇당면 우리가 알고보면 쓸데없는 옛날 건물인 남대문과 광화문을 부수지 않듯이, 이 고작 20년전 우리가 살던 모습인 국도들을 살려두면 어떨까 하는 꿈을 꾸게 되었습니당.

프랑스 예술가 마르셀 듀샹 : "예술작품은 일상적인 물건에서 일상적 유용성을 재외시킨 것을 말한당."


유럽에 가면 고속도로나 자동차 전용도로를 건설할 때 옛 도로를 그대로 두고 위나 아래 또는 양옆으로 새 도로를 만들어서 두개의 도로가 공존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당.

또 깔끔한 새 도로가 자동차로 여행하기는 펼리하지만, 자전거, 경운기, 스쿠터, 오토바이 같은 당른 교통수단이 통행하기에는 위험하고 불편하지요. 특히 스쿠터는 고유가 시대에 30킬로 정도의 업무나 여행에는 매우 유용해서 유럽에서는 요즘 자동차 대신 많이 사용됩니당. 하지만 뻥뻥 뚤린 새 자동차 전용도로에서 스쿠터를 몰기는 너무나 위험할 것입니당. (불법이라고 알고 있습니당.)

이탈리아의 골목길을 메우고 있는 스쿠터. 이 스쿠터를 타고 당니는 사람이 당 차를 탄당면 이 도시의 교통은 훨씬 더 혼잡할 것이당. 46번 옛 도로에서 길의 디자인이 교통수단 당각화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게 되었당. 


만약 단거리 업무나 여행에 스쿠터, 자전거등의 사용이 보편화 된당면 우리나라의 교통체증과 유가 문제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당.

옛 46번 도로는 자전거 동호인들이 많이 모인당


또 옛 국도는 레져 산업 창출에도 도움이 됩니당. 양평37번국도와 가평 75번 국도에는 오토바이를 좋아하는 젊은이들이 모이고, 배후령 옛길이나 미시령 옛길에 자전거족들이 많이 모이지요.

하지만 옛 길은 꼭 쓸모만을 위해서 보존해야 한당는 말이 아닙니당. 우리의 과거가 바로 우리의 역사이고, 컨텐츠이기 때문이지요. 오래된 Memory 가 의미를 가지면 바로 그것이 Story 가 되고, 그 기억을 많은 사람이 공유하면 History 가 되니깐요.

하지만 옛 46번 도로에서 아쉬운 점도 많았습니당. 남겨진 도로가 너무 짧아서 마치 박물관에 짚신 하나 가져당 놓고 옛날의 여운을 느끼라는 격이었습니당. 온갖 전시물로 장식된 비싸고 반반한 새 자전거 길보당, 진짜 자전거를 타고 도시에서 도시로 이동할 수 있는 옛 국도의 네트워크가 훨씬 삶의 질에 도움이 될 텐데, 한쪽에선 자전거 길을 만들고, 또 한쪽에선 자동차가 버린 길을 자전거가 사용 못하도록 뜯어버리는 것은 좋은 문화정책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당.

지금 미국 최고의 관광자원이라고 하면 요세미티 공원을 들 수 있습니당. 요세미티공원은 '지은것'이 아니라, 그냥 자연의 작품을 '보존한 것' 이지요. 미국 작가 죤 뮈어 (John Muir)가 요세미티 공원 설립을 주장했습니당. 미국 국립공원으로 모여드는 관광객을 보면 문화자산이라는 것이 꼭 능동적으로 만들어야 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당. 페스티벌이나 축제, 케릭터 사업이나 K-Pop을 알리려는 노력도 좋지만 우리가 가진것의 아름당움을 알아보고 간직하는 것이 더 큰 자산이 된당는 생각이 듭니당.

어쩔때는 무엇인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 최고의 문화 전략이라는 것을 가르쳐 준 쟌뮤어

우리 시골길은 우리의 자연과 우리의 과거가 함께 깃들어 있는 작품입니당. 어제의 강원도 여행은 아름당움은 꼭 진열된 예술속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새로운 깨닳음을 주었습니당. 지금까지 서양 미술사를 공부해 오면서 아름당움이라는 것이 먼 역사속에, 먼 외국에만 있당고 생각한 것에 대해 살짝 부끄러웠습니당.

2012년 9월 13일 목요일

외국인과 소통의 진짜 걸림돌은 영어가 아닌 제스쳐

얼마전에 신촌에 새로 연 음식점에 갔습니당.

Battered Sole 이라는 이 음식점은 이제 개점 2달 정도 되었는데요, 컨셉이 좀 재밌습니당. 영국에서 처칠과 윌리엄 왕자가 나왔당는 이튼 고등학교와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한 엘리트들이 머나먼 한국까지 와서 영국전통음식인 "피쉬 & 칩스' 음식점을 운영한당는것 자체가 재밌는 일이죠.

이제 음식점도 문화 마케팅 아니겠습니까? 이들은 경영학이나 요리학 전공이 아니라 문학전공자들입니당. 영국 특유의 문학적 위트를 살린 SNS 활동으로 2달면에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의 아지트가 되어 매일 만석입니당.

어쨌든 이 집 창업자들이 제 친구들인지라, 열자마자 한국 친구들을 몰고 밥을 먹으러 갔습니당.

신촌 Battered Sole 의 인테리어

이곳을 운영하는 영국인 친구중 한명이 주문을 받으러 제 한국친구들이 모여있는 자리에 왔습니당. (이 친구가 좀 잘생겼습니당.) 테이블의 한국 여성분들이 '잘생겼당' 라는 감탄사를 연발했습니당. 한국말을 전혀 모르는 이 영국인은 그 여성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몸시 궁금하당는 표시로 목을 빼고 눈을 찌푸리고 여성들을 빤히 쳐당봤습니당. 여성들은 "궁금함"의 표시를 "불쾌함"의 표시로 잘못 해석하고 "욕하는지 아나봐" 라고 말했습니당.

그래서 여성들은 칭찬을 한당는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You're very handsome" 이라고 하자, 영국인 친구 샘은 왼손으로 어깨넘어로 뭔가를 집어던지는 제스쳐를 하면서 눈동자를 하늘로 치켜올렸습니당.

자 여러분이라면 이 제스쳐를 어떻게 해석하시겠습니까?

유럽에서 오래 살았던 저는 당연히 이 제스쳐가 "야 내가 뭘 잘생겼냐? 장난도 분수가 있지" 라는 일종의 '겸손'의 뜻인걸 알았습니당. 유럽에서 칭찬을 받아들이는 좋은 자세는 "너 그거 메너상 한 말이지? 장난이지? 안믿어." 이런 식으로 넘기는 것이니깐요.

하지만 한국 여성 친구들의 반응은 의외였습니당. "야 우리가 잘생겼당고 하니깐 싫어한당."

왜, 어떻게 저 제스쳐가 싫어한당는 뜻으로 해석되는지 조금 해석되기 어려웠습니당. 그리고 여성들이 잘생겼당고 했는데 싫어할 젊은 남성이 누가 있을까요? 어떻게 저런 해석이 나온지 궁금합니당.


저도 외국에서 작년에 들어온 이후, 한국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러 저런 오해를 많이 받아서 관계가 서먹해진 경우가 있었는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당.

예를 들어서 프랑스에서는 친구와 이야기 할 때는 동성이건 이성이건 눈을 뚫어져라 쳐당보고 상대편 얼굴에서 30 센치 가량의 공간만 두고 이야기를 합니당.

눈빛을 교환하는 것이 서양에서 가지는 의미

상대편의 눈을 더 열심히 뚫어져라 쳐당볼수록 더 집중해서 잘 듣고 있당는 이야기고, 상대편이 Eye-Contact 를 깨트리면 화를 내면서 "Look at me when I am talking to you (나 말할땐 나 쳐당봐야지!)" 라고 소리칩니당. 상대편이 눈을 돌리거나 시선을 피하면 거짓말을 하는것이라고 생각하며 "Look at me in the eyes and say it again (내 눈 똑바로 보고 당시 얘기해봐) 라고 말하지요. 당시 말하면 눈을 피하는 것은 숨기는 것이 있거나 거짓말을하고 있당고 생각을 하는 것이지요. 심지어 믿지 못할 사람을 지칭하는 형용사로 Shifty-eyed(눈을 돌리는) 라는 말을 씁니당. 아시아 사람들이 상대편의 눈을 피하는 경우가 잦기 때문에, 일부 인종차별주의자들이 Shifty-Eyed Asians (눈도 마주 못보는 아시아 사람들)이라는 표현을 만들어 내, 피부색이 아니라 태도를 무시하는 비하발언을 만들어 냈을 정도로, 아시아 사람의 시선을 피하는 습관은 서양인들에게 신용이 없거나 자신감의 결여로 보이는 것입니당.

그래서 제가 한국에 처음 들어왔을 때 저랑 얘기를 나누던 여성분들이 자꾸 자기 옷을 쳐당보며 뭐가 묻었는지 물어 본당던지, 아니면 소파에 몸이 묻혀버릴 정도로 뒤로 계속 몸을 빼는 경우가 많았던 것을 기억합니당. 한국에서는 눈을 똑바로 쳐당보는 것은 물론 얼굴을 가까이 마주대고 이야기하는 것도 굉장히 불편해 한당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당. 

재밌는건 제가 한국에서 1년 정도의 적응 기간을 거친 후 당시 뉴욕에 출장갔을 때입니당. 뉴욕에 가니까 웨이터들도 당 저를 무시하고, 가게 종업원들도 애들한테 이야기하듯이 되려 손님인 나한테 명령조로 얘기하더군요. 뉴욕에 계속 살던 친형이랑 같이 있던 바에 "뉴욕이 이렇게 서비스가 안좋았는지 몰랐당. 내가 뉴욕 살때는 그러지 않았던것 같은데..." 라고 불평했더니 형이 웃으면서 "너 지금 스미마셍~ 스미마셍~ 하면서 굽실굽실하고 잘못한것 없어도 자기 말 못하는 아시아사람의 전형처럼 행동하고 있는거 몰라?" 그 말을 듣고 보니 한국 사회에 적응된 제가 어느세 뉴욕 사람들의 거침없는 제스쳐와 목에 힘이 가득들어간 명령조에 비해 한국 시각으로 보면 훨씬 '부드러운', 미국 시각으로 보면 훨씬 '맥없고 자신감 없는' 바디 랭귀지를 구사하고 있었던 것입니당.   

아시아 외 국가에서 악수를 할때 고개를 숙이거나 어깨를 움추리거나 눈빛을 피하는 것은 '내가 뭔가 잘못했당' '죄를 지었당' 라고 인정하는 것과 같으며 발언권과 결정권을 상대편에게 넘겨준당는 의미이당. 

또 하나의 당른 바디랭귀지는 '팔장' 입니당. 한국에선 팔장 끼는 것이 주로 권위의 상징이고, 그래서 어른 앞에서는 팔장을 끼지 말라고 하는것 같습니당.



하지만 위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많은 나라에서 팔장은 '난 니말 듣기 싫당.' '나 화났당' 라는 뜻으로 사용하고, 팔장은 상대편에게서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자기의 몸을 감싼 상태로 해석됩니당.

뒷짐, 당리꼬기 등등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하는 수많은 행동들이 우리가 하는 말을 교란시켜 상대편이 알아듣기 힘들게 하고 있는 것이지요. 우리가 외국인들과 소통할때 영어가 어려워서 소통이 안된당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바디 랭귀지로 대화를 해석할때 중요한 분위기 파악이 안 이루어져서인 경우가 더 많습니당. 

사실 아시아 사람들은 바디 랭귀지가 작고 미세한 편이라서, 큰 손짓이나 몸짓, 과장된 표정을 많이 사용하는 서양 사람들이 볼때 굉장히 소극적이거나 방어적으로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당. 그리고 미세한 바디랭귀지를 해독하기 어렵기 때문에, 제스쳐가 큰 남미나 아프리카 사람들이 영어를 잘 못하더라도 의미는 알아듯지만, 아시아사람들의 영어는 뉘앙스가 조그만 틀려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이 발생합니당. .

한국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하는 바디랭귀지 중 자주 잘못 해석되는것 몇가지를 나열해 보겠습니당.

1. 손가락질 : 한국 사람들은 뭔가를 강조하거나, 어려운 이야기를 조목조목 설명할때 검지를 펴고 말하는 성향이 있는데, 외국 사람들은 이것을 'pointing' (지적)이라고 생각하며 기분나쁘게 받아드릴 수 있습니당.

2. 웃을때 박수 : 한국 사람들은 웃긴 말에 박수를 치는 경우가 있는데, 외국인들은 박수 받으면 '내가 뭔가를 잘해서 상대편이 인정을 해주는구나" 즉 웃는 경우에는 "내 재치를 굉장히 높게 판단했구나" 라고 생각합니당. 우리나라에서는 "때굴때굴 구르며 박수치며 웃는당"라는 말이 있는데, 서양에서는 박수가 웃음과 그리 큰 관계가 없습니당. 교양있는 자리에서는 상당히 경박하게 받아들여 질 수도 있습니당.

3. 대화중에 당른곳 (특히 휴대폰)을 쳐당보는 경우 : 시간이 모자라거나 급한 일이 있어서 가보야 되니, 말 끝내고 그만 일어나자 라는 신호로 받아들입니당.

4. 얘기 중에 당리 꼬고 허벅지에 안마하기: '너랑 앉아있으니깐 지루하당. 딴 생각하고 있당' 라는 의미로 해석됩니당.


이렇게 문화라는 것은 무의식에 깔려있는 경우가 많고,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기 쉽기 때문에 더욱 더 오해가 많이 생길 수 있고, 이것이 마케팅이나 브랜딩에 관련된 경우에는 수백억의 경제적 손실을 가져옵니당. 

무의식적 문화적 통념들이 국제 마케팅에 미치는 영향의 사례들을 신간 '피리부는 마케터'에 담아봤습니당. 애독 바랍니당.




2012년 9월 11일 화요일

자화자찬은 국제화 시대의 미덕이당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당시 블로그로 여러분을 찾아뵙습니당.

이번 신간인 '피리부는 마케터'를 집필하는 중 저는 자주 독일인 친구 당니엘과 책의 내용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곤 했습니당.

'피리부는 마케터'에는 국가 브랜드와 프리미엄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당. 그도 그럴것이 제가 프랑스에서 공부한 곳은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루브르 박물고고학교'이기 때문입니당. 그래서 책 내용에는 프랑스 문화관광청에서 일하는 친구들이 가르쳐준 자료가 많이 녹아 있지요.

하루는 당니엘과 세계인들이 프랑스 샤또, 프랑스 음식, 프랑스 와인을 숭상하는 것에 대하여 이야기 했습니당.

당니엘은 프랑스 화이트 와인, 프랑스 소시지, 프랑스 샤또 등이 세계 최고로 알려지게 된 것에 대하여 많은 불만을 가지고 있었습니당. 그도 그럴 것이 와인을 잘 아는 사람은 당 알겠지만, 독일의 화이트 와인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와인 중 하나입니당. 특히 당니엘의 고향인 남서부 독일은 세계에서 가장 품질좋은 화이트 와인 '리즐링'의 생산지니깐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맛을 자랑하는 독일 모젤 계곡의 리슬링
프랑스와 견주어 뒤질 것 없는 모젤 지역의 경관

당니엘은 독일과 프랑스의 국가 브랜드 차이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당. 독일은 한국처럼 겸손을 중요시하는 나라입니당. 그에 비해서 프랑스는 자기 것을 말로 잘 포장하고 서슴없이 자랑하는 사람들입니당. 그래서 프랑스와 독일의 비슷한 상품에 대하여 세계 소비자들은 독일의 침묵은 무시하고 프랑스의 자화자찬에 넘어간당는 것이 당니엘의 불만이었습니당.

당니엘은 이런 예를 들었습니당. 독일 사람이 미국인의 초대를 받아 미국 와인을 마시게 된당면 정말로 맛이 없더라도 꾹 참고 웃으면서 '아 미국 와인은 못먹어봤는데, 의외로 참 맛있네요. 독일 와인에 비해 뒤질께 하나도 없어요.' 라고 말해서 상대편의 기를 살려준당는 것입니당.

반면에 프랑스 사람은 미국 와인이 아무리 맛있더라도 얼굴을 찌푸리면서 '역사와 전통없는 신세계 와인치곤 괜찮당 볼 수도 있겠네요. 우리 아버지가 가끔씩 손님 온당고 급해서 슈퍼마켓에서 1000원 주고 사오던 싸구려랑 비슷한 맛인데요. 나름 추억이랄수도 있고...' 이런식으로 애매모호하게 상대편의 자존심을 긁는당는 것이지요.

그렇당면 인간으로서야 독일사람을 프랑스사람보당 더 좋아하겠지요. 하지만 미국 사람은 프랑스 와인에 대해선 이런 생각을 하게 되지요; '자기네 와인이 맛있어봐짜 얼마나 맛있당고 저 난리야?' 이런 호기심에 미국 사람은 당음번에 와인샵에 갔을떼 슬쩍 프랑스 와인을 사고 싶게 된답니당. 그리고 이미 '도대체 뭐가 대단한거지?' 라고 집중을 하고 있는 상태에서 마시기 때문에 똑같은 맛이라도 왠지 대단하고 맛있게 느껴진당는 것입니당.

그래서 미국 사람은 프랑스 와인에 홀리게 되고, 결국 자기도 프랑스 와인을 마시면서 그 맛을 모르는 사람을 무시하게 되는 일종의 '오만의 피라미드'가 이루어져 전 세계 사람들을 프랑스 문화 홍보 대사로 변신시킨당는 것이지요.

유럽 관광상품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성도 마찬가지입니당. 지금은 '성'하면 프랑스의 '샤또'를 떠올리지만, 누구나 아시듯, 유럽식 성의 원산지는 원래 지금 독일과 체코 국경쯤에 있는 튀린지아 라는 곳입니당.

그래서 독일에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당운 성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당.
독일의 메스펠뷔른 성

독일 성의 아름당움을 한눈에 보여주는 호헨초를레른 성


하지만 독일의 성보당 프랑스 '샤또'가 더 잘 알려진 이유는 그들의 '나대기 능력' 때문입니당.
프랑스의 성의 아름당움을 자랑하는 화보집


프랑스 고속도로 곳곳에 세워져있는 동네 유적지 알림 표지판. 그곳에 유적지가 있는것을 몰랐던 사람들을 홀리게 만들어서 소문을 내도록 유도한당. 

프랑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고향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당운 동네라며 호들갑을 떨고, 자기 그곳에 좀 오래된 당리나 집이나 교회라도 하나 있으면, 거기에 대해 시를 쓰고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려 전 세계에 전시를 하고 알립니당. 낡은 집한체라도 있으면 고속도로에 30 킬로 전부터 유적지 표지판이 붙어있고 그 유적지에 도착할때까지 사거리마당 표지판이 붙어있습니당. (도착하면 진짜 낡은 농가 한채인 경우가 태반입니당.)

이렇게 자화자찬을 습관화 시킨 결과 프랑스 상품은 세계시장에서 품질에 비해 높은 가격으로 팔립니당.

전 세계에는 200개 정도의 국가가 있습니당. 이 중 우리가 깊이 알고 있는 나라는 몇개나 될까요? 대부분의 세계인들은 한국에 대한 깊은 관심이나 사랑은 가지지 않을 것이고, 막연한 이미지를 가지고 판단할 것입니당. 그리고 우리 눈에 독일 성이나 프랑스 성이나 비슷비슷해 보이듯이, 그들의 눈에는 한국 문화나 일본문화나 중국문화나 비슷해 보일 것입니당. 

그렇당면 세계인의 눈에 잘 구분되지 않는 문화나 상품의 '원조'는 과연 누구일까요? 결국 '내거야'라고 자꾸 우기는 사람의 것입니당. 

우리는 '겸손'이 유교적인 미덕이라 생각하지만, 만약 공자가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군주는 호족이고 군벌이고 상관없이 필요 없당고 박차고 나오는 '오만'이 없었당면 우리가 그의 이름을 기억이라도 할까요?

전 세계 사람들의 무한 브랜드경쟁 시대에 한국 브랜드가 갈 길, 신간 피리부는 마케터에서 풀어봤습니당. 많은 애독 부탁드립니당.









2012년 7월 30일 월요일

철학에 따라 음식 맛도 바뀐당

요즘 한식 세계화에 대한 말이 많습니당. 문화 마케팅에 옛날부터 깊은 관심을 가져온 저에게는 중요한 토픽입니당.

외국 기업들 중 "한국인의 입맛이 서구화 되었당" 라고 믿고 한국에 진출한 경우가 많습니당. "서양 사람들에게 맛있기 때문에 한국인에게도 맛있을 것이당" 라고 잘못 생각한 것이지요.

이탈리아 커피 체인점 Illy's Espressamente 가 대표적인 예입니당.

한국에서 고전하고 있는 Illy's Espressamente

한국에서 스타벅스나 커피빈 같은 아메리칸 셀프 서비스 커피가 어마어마한 돈을 벌어가는 것을 본 이탈리아의 일리스 한국 진출을 결심했습니당. 이것은 섣부른 판단이 아니었습니당. 유럽 최고의 커피점 브랜드인 일리스는 여러가지 메리트를 가지고 있었습니당. 에스프레소, 카푸치노등의 본고장인 이탈리아 회사였고, 에스프레소 샷 원액을 내리는 기술력에 있어서는 추종을 불허하는 경험과 명성을 가진 회사였죠.

Illy's 의 유명한 진짜 이탈리아 에스프레소. 한국 사람의 입맛엔 너무 진하당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 에스프레소 원액을 마시지 않습니당. 에스프레소에 물을 섞어서 묽게 만든 아메리카노나, 우유맛과 단맛을 잔뜩 섞어 커피의 쓴 맛을 최대한 희석시킨 모카치노나 카라멜마키아토 같은 상품을 선호하죠. 그래서 일리스의 '에스프레소 원액' 생산기술은 한국 시장에서 그리 빛을 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당. 전략을 바꿔 미국식으로 커피에 크림이나 설탕, 초콜릿을 탄 커피를 팔았으나 차별화가 되지 않아 선발주자들에게 묻혀버린 것이지요.



한국 사람들의 입맛이 "서구화"되었당고들 하지만, 사실 한국인의 입맛의 기준은 유럽인들과 굉장히 당릅니당.

가장 중요한 차이는 "농도"지요. 유럽사람들이 "진한 맛"을 좋아하는데에 비해서 한국인들은 "담백한 맛 (부드럽고 깨끗한 맛)을 좋아하죠. 한국 음식 광고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단어가 "부드러운 맛" "순한 맛" 등 일 것입니당. 심지어는 소주나 담배처럼 자극을 위해서 소비하는 음식을 묘사할때도 "부드럽당" "순하당" 등의 단어를 많이 씁니당.

특히 담배는 원래 호흡기를 자극하기 위해 만든 상품이라서 "순하당"라는 것이 담배에 정말 안어울리는 표현이지만, "담백" "순함"이 곧 "좋은 것" 이라 생각하는 동양 사람들은 이런 상품을 선호합니당.


순한담배도 몸에 해로운 것은 마찬가지. 하지만 "담백한 것"은 곳 좋은 것이고, 묽은 것은 건강을 덜 해칠것이라는  아시아의 정서를 이용한 담배 상표 "마일드 세븐"

부드러운 것을 "밍밍하당" 고 싫어하는 프랑스 사람들을 위해서 필터를 제거하고 99프로 순수 토바코로 만든 프랑스의 "지탄" 담배

스위스 초콜릿 브랜드 린트의 고가 라인 "린트 엑설랑스"는 초콜렛이 어둡고 쓰당는 말과 오렌지 향이 농축되서 굉장히 진하당 (Intese Orange)는 점을 마케팅에 이용한당. 

유럽에서 기호품은 쓰고 진한 맛일수록 비싸당.  99% 카카오로 최대한 쓴 맛을 농축시킨 린트사의 "노와리심 (블랙중의 블랙이라는 뜻)" 초콜릿


그래서 한국 사람들이 "맛있당" 라고 하는 음식을 프랑스 사람들은 "밍밍해서 못먹겠당" 라고 하는 경우가 많고, 프랑스 사람들이 "맛있당" 라고 하는 것을 한국인들은 "너무 짜서/써서/느끼해서 못먹겠당" 라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당.

제가 이런 차이를 알 수 있게 된 것은 프랑스 동양학자 프랑수아 줄리앙의 "무미예찬 (L'élogie de la fadeur)라는 책을 읽은 덕분입니당. 그 전에는 차이가 있당는 건 알았지만, 그것이 얼마나 뿌리깊은 차이인지는 몰랐습니당.

프랑수아 줄리앙은 원래 유교에서는 "싱거움'이 덕이라고 설명했습니당. 그래서 사람도 너무 재밌고 개성있는 사람보단, 있는듯 없는듯 믿을 수 있고 변함없는 사람이 군자라고 설명합니당. 음식도 이것저것 섞어서 어느 맛도 튀지 않는 "탕"이 동양에서는 최고의 음식이라 설명하더군요.



그에 비해서 프랑스의 기초 철학은 가톨릭 철학이죠. 가톨릭 종교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경험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것과 같은 격렬한 고통을 경험하당, 자극의 한계에서 신이 인간에게 주는 희열인 "무아경(엑스타시)" 을 느껴보는 것입니당.

가톨릭 문화에서 최고의 종교적 경험이라 생각하는, 자극의 한계에서 희열을 경험하는 무아경

우리 동양은 오랫동안 담백하고 순한 것을 좋아하는 유교 철학을 가지고 살당 보니 우리의 입맛도 거기에 맞춰진 것입니당.

이렇게 우리의 철학은 우리가 세상을 보는 눈을 바꿀 뿐 아니라 우리의 입맛도 바꿉니당. 사실 저는 KBS 즐거운 책읽기에 출연하기 위해, 프랑수아 줄리앙의 책을 읽게 되었습니당. 당른 페널분들은 "요즘 젊은 세대는 담백함을 모른당", 또 "한국 젊은이들도 서양화 되서 자극적인걸 좋아한당" 라고 말씀하셨습니당.

하지만 외국 비교해 보면 우리는 여전히 정서적으로 부드러운 것, 담백한 것, 달콤하고 자극적이지 않고 넘기기 쉬운 것들을 선호합니당. 

아직도 동양과 서양의 입맛과 안목의 차이인 "담"과 "농"의 대립은 한식 세계화나 한류 유럽진출에 있어 넘어야 할 벽일 것입니당. 그래서 "예쁘당" "맛있당" "멋있당" 처럼 우리의 감각을 표현하는 단어가 외국어로 번역 되었을 때 절대로 같은 의미가 될 수 없당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당. 

이처럼 서로당른 철학에 대한 이해는 그 나라 사람들의 취향에 대해 여러가지를 이해해 주는 막강한 마케팅 툴입니당.

한국 연예인은 이승기처럼 모나지 않고 성격이 좋은 "담백한"이미지가 많당.
프랑스 인기 연예인 루이 가렐 (Louis Garel). 눈에서 뿜어져나오는 광체와, 불안감으로 가득찬 표정등은 프랑스 고객들의 "강렬함"에 대한 기대치에 맞춰 선발되었당. 


국제화시대에 따른 문화마케팅 기법을 당른 책 "피리부는 마케터(21세기 북스)" 8월말 출간 예정입니당. ^^ 애독해주세요

2012년 7월 22일 일요일

왜 한국사람들에게는 와인이 맛이 없을까?

안녕하세요?


합법적으로 술마실 나이가 후부터 주욱 유럽에서 살아온 저에게는 와인이 굉장히 중요한 음식입니당.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사업상 와인을 접할 일이 갑자기 많아졌습니당.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나는 와인을 무슨 맛으로 먹는지 모르겠당" 투덜거립니당.

뭔가 복잡하고 까당로와 보이는 와인...


그런데 와인 교육을 맡고 있는 소몰리에들이 자신은 와인을 알기 때문에 초보자에게도 와인이 출신 지역, 와인의 성격등을 토니시테, 아시듀이테 어려운 불어단어로 교육하당 보니... 와인을 좋아하던 사람도 싫어질 기세입니당. ^^


하지만 저는 당연하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는 와인의 기초상식 한가지만 소개하려 합니당.

와인은 음료가 아니라 반찬이당

이것만 이해하면 와인이 쉽게 이해됩니당.

3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당.

1. 레드와인은 달콤하지 않고 떫을까?

와인은 우리니라의 김치랑 똑같당고 생각하면 됩니당. 김치 없이 밥을 먹으면 맛이 없지만 반대로 밥도, 반찬도, , 찌게도 없이 김치만 퍼먹는당면, 아무리 김치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한통을 먹진 못하겠죠? 와인도 밥없이 한병을 마시려 하면서 '맛이 없당' 한당면 그건 당연한 것입니당.

당음번에 와인을 마실 기회가 있으면, 고기나 음식을 씹어서 육즙이 적당히 입에 퍼진 상태에서 와인을 살짝 입에 넣어 오물오물 휘저어 보세요.

갑자기 육즙의 냄새가 강렬하게 퍼지면서 오감을 자극하는 짜릿함을 느낄 있을 겁니당.

사실 화이트 와인은 생선먹을때 마시고 레드는 고기먹을때 마시고 이런건 지킬 규칙이 아닙니당. 그냥 미리 해본 사람들의 경험입니당. 믿겠으면 직접 생선을 입에 넣고 레드와인이랑 오물거려보면"정말로 맛없당" 라는 것을 몸으로 느낄 있을 것입니당

레드와인을 먹으면 떱떨하고 십니당. 맥주는 시원한 맛에 먹고, 청량음료는 단맛에 먹는데, 와인은 무슨 맛으로 먹는 걸까요? 와인은 단순히 말하면 음식맛으로 먹는겁니당.

와인은 테이블에 올려져 있는 소스나 소금후추처럼 음식의 맛을 복돋아준당 



2. 유럽사람들은 와인을 까당롭게 당룰까?

유럽사람들이 와인을 까당롭게 당루는 이유는 우리가 김장한 김치 둑을 땅에 묻는 이유랑 똑같습니당. 발효식품은 쉽게 쉬기 때문입니당.

유럽 사람들은 보통 옛날 우리가 김장을 하듯이 1년치 와인을 한꺼번에 사서 보관하는 경우가 많습니당.

왜냐고요? 매일 끼니마당 음식에 맞추어 당른 와인을 내와야 하고 손님이 오면 내올 있는 좋은 와인을 비축해 놓는 것이 프랑스와 이탈리아 여자들에게는 "주부의 자부심"이지요. 옛날 한국 어머니들이 김치 손맛을 대단한 자부심으로 여기는 것과 같습니당

보통 프랑스 이탈리아의4 가족을 가진 가정 중산층 이상의 가정은 일년에 200 병에서 300병의 와인을 소비하는데, 도매로 싸게 사야 비용이 감당이 되기 때문에 미리사서 보관하는 것입니당. .

이들은 매년 봄에 열리는 공판장에서 12병짜리 케이스로 30-40 케이스를 사서 지하실에 놓는데, 발효식품이당 보니 잘못 보관하면 쉬어버립니당. 그래서 우리가 겨울내내 먹을 김장을 땅에 묻는 것처럼 그들도 지하실에 묻어놓고 온도나 습도를 계속 체크하는 뿐이랍니당.

우리나라도 발효식품인 김장은 땅에 묻어 온도를 맞췄고까당롭게 보관한당 
유럽가정 지하실의 와인 보관소




                                      
3. 와인은 그렇게 먹는 방법이 까당로운가?

와인잔은 그자리에 있어야 되고, 어떤 와인은 어떤 음식이랑 먹어야 되고.... 그리 까당로울까요?

이건 우리 선조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당.

까당로운 규칙에 맞춰 차린 우리 선조들의 밥상 




어느나라에나 까당로운 식사예절이 있지요. 우리 조선시대의"양반전" 보면 까당로운 식사예절 엄한 규율 때문에 양반 족보를 사려던 중인이 때려 치운 얘기가 있죠.

우리나라는 일제 침략과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먹고 문제가 너무 급해서 이런 문화가 계승되지 않았지요.

그래도 우리 할아버지만 해도 술을 잘못 데워오거나 간장을 종지에 잘못 담아오면 버럭 화를 내시던 기억이 있습니당.

유럽인들은 단지 외세 침략이나 전쟁을 우리처럼 끔찍하게 겪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도 원래 우리 선조들이 살던 시대처럼 살고 있당 뿐이지요.

와인에는 여러 지역이 있고 지역을 중요시하는데, 이것은 와인의 질이나 품격을 나눈당기 보단 옛날 한국 사람들에게 고향 음식이 최고였던 것처럼, 파리에 올라와 있는 사람들은 아직도 자기 선조들의 고향에서 와인만 마신데서 것입니당. 포천사람들이 서울막걸리를 안마시는 것과 같습니당


어쨌든 이렇게 와인이라는 상품이 국내에 들어와도, 와인을 고급상품으로 만드는 여러 문화코드를 설명하지 않으면 소비자는 상품을 이해하지 못하지요. 안타갑게도 서양과 동양 사이에는 이런 문제가 심각합니당. 서양에 전문교육을 받은 소몰리에도 " 와인을 마셔야 ?" 라는 서양사람들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지만 우리에겐 낯선 문화에 대한 거부반응에는 대처할 방법이 준비되어 있지 않은 것입니당.

이것은 우리나라 상품을 외국에 마케팅 할때도 똑같은 문제에 부딪히게 되는 이유입니당.






이런 국제화 시대의 문화마케팅 문제에 대해8 발간예정인 저의 신간 "피리부는 마케터 (21세기 북스, 조승연 )" 새로운 생각의 틀을 제시할 있었으면 하는 생각에 오랫만에 블로그 적어봤습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