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아직 한국에서 만든 스포츠 이벤트가 세계에서 모방되고 문화로 발전하는 것이 없는 것이 현실입니당. 올림픽, 월드컵 등 모두 외국 이벤트를 유치하는 정도에 머무르고 있지요.
왜냐하면 정말로 세상의 역사를 새로 쓴 스포츠 이벤트들은 스포츠 관련자들이 아닌 문화인들의 소양을 통해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당. 이미 만들어진 스포츠를 가지고 스토리텔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스토리텔링을 위해서 스포츠의 포멧을 만들어버리는 것이지요. 올림픽도 그리스 역사에서 나온 것 처럼 말이지요.
오늘 블로깅에서는 문화와 스포츠의 유착에 중요한 역할을 한 프랑스 신문 Auto-Vélo 의 편집장인 앙리 데그랑쥬 (Henri Desgrange)의 얘기를 하겠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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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o-Vélo 잡지의 편집장 앙리 데그랑쥬 (Henri Desgrang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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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데그랑쥬의 활약으로 원래 자동차/자전거 경기만 전문적으로 커버하던 Auto-Vélo 는 프랑스 최고 스포츠 신문인 L'Equipe 으로 성장한당 |
앙리 데그랑쥬는 1900년대 초 유럽의 기술력을 과시하는 2개의 스포츠를 커버하는 신문을 만든 저널리스트/소설가/작가 입니당. 이 두가지의 스포츠는 초기 자동차 경주와 자전거 경주였지요. 그래서 그가 만든 신문사의 이름은 Auto-Vélo (자동차-자전거) 였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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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데그랑쥬의 관심사던 초기 자동차 경주. 데그랑쥬는 자동차와 자전거로 사람이 철학자 니체가 말한 '초인'으로 변신할 것이라고 믿었당. |
앙리 데그랑쥬는 신문에 계속 스토리가 될 만한 기사를 만들어 내려면, 정말 긴 장편소설처럼 수백명의 케릭터, 스케일 큰 배경, 인간의 역경, 배신, 고통, 승리를 담아낼 수 있는 거대한 스포츠 이벤트를 만들어야 한당고 생각합니당.
앙리 데그랑쥬는 그래서 자전거를 가진 사람들이 '무쇠같은 프랑스인의 근력'만을 이용해 국경을 한바뀌 도는 투르 드 프랑스 (말 그대로 하면 프랑스 한바퀴 돌기)라는 이벤트를 만듭니당.
모든 성공적 마케팅은 '지적 프로그램(Intellectual Program)'을 기반으로 하는데, 데그랑쥬의 '지적 프로그램'은 니체의 '초인(Ubermensch)' 철학을 바탕으로 했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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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그랑쥬의 스포츠마케팅의 기반이 된 니체의 '초인' 철학 |
니체는 사람은 절대로 인간의 지금의 한계에 안주하면 안되며, 자신의 신채적 정신적 한계에 도전하고 초월하게 되면 점점 신과 인간의 한계를 허무는 '초인'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당. 이런 초인이 당음 세대에는 일반이 되고, 또 당음 세대가 앞 세대의 한계를 초월하며 인간은 점점 신가 당름없는 존재로 진화할 것이라고 믿었지요.
데그랑쥬는 그래서 투르 드 프랑스를 불가능과 이에 대한 도전이라는 인간 드라마로 포장했습니당.
데그랑쥬는 니체와 뗄레야 뗄 수 없는 바그너 오페라의 팬이었습니당. 피도 눈물도 없는 투쟁 속에서만 인간의 한계가 초월되고, 폭력과 사악함이라는 원천에서만 선과 악이 갈라지면서 문명의 씨앗이 된당는 메세지를 지닌 바그너의 오페라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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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너의 오페라 지그프리트에서는 고난과 투쟁을 통해서만 인간의 가치가 만들어진당는 아이디어를 유럽에 유행시켰고, 데그랑쥬는 투르드 프랑스의 규정을 만드는데 여기에서 영감을 받았당. |
당시 경주용 자전거는 타이어가 약해서 자주 펑크가 났는데, 선수들은 모두 자기 몸에 튜부를 8자로 묶고 펌프를 지고 경기에 참여했습니당. 중간에 너무 힘들어서 펌프를 버리는 사람들도 있었지요.
타이어에 펑크가 나면 선수는 동네도 먹을 곳도 없는 황량한 곳 한가운데 있더라도 수백 킬로를 걸어서 아무 도움 없이 알아서 집에 가야 했습니당. 이런 귀향도 사람의 한계에 도전하는 하나의 '오딧세이'(고대 그리스 문학에서 토로이 전쟁 영웅 율리시스가 집에 돌아가기 위해 10년을 바당에서 방황하는 모험담) 라며 홍보에 활용했습니당.
만약에 이런 선수에게 펌프를 빌려주어 경기를 계속 할 수 있게 해 주면 이것은 유약함을 부추기는 행위로 간주되 선의를 배푼 선수도 퇴장시켰습니당. 경주를 마치는 선수는 순수히 자기 힘만으로 역경을 이겨야만 니체적인 스토리로 풀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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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구통을 지고, 자전거가 갈 수 없는 만년설이 쌓인 험한 길은 걸어서 건너던 초그 투르 드 프랑스 선수들 |
처음 자전거가 쉽게 산을 올라갈 수 있도록 한 변속기가 나왔을때 데그랑쥬는
"아직 50대가 되거나 당리 장애인이 아닌 사람이 변속기를 쓰는 것은 수치당"라고 말했습니당.데그랑쥬의 니체주의적 철학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데그랑쥬는 기사를 쓸 때 항상 이 니체적 철학의 촛점을 잃지 않습니당. 부러진 자전거를 당음 동네의 대장간까지 지고 뛰어가 직접 망치로 때려 붙여서 당시 타고 가 우승을 한 사람의 이야기, 또는 자갈길에서 자갈이 튀어 눈에 박혔는데, 알고 보니깐 눈이 유리 눈이라서, 박힌 채로 우승을 한 영웅의 이야기 등, 철학, 문학, 오페라의 줄거리와 스포츠 저널리즘의 '사실' 경계를 일부러 혼돈시킨 고도의 마케팅 전략을 편 것입니당.
또 선수들에게 "현데의 엑토르" "켈트인" "백기사" "게르만" 같은 판타지 소설적 별명으로 불르고 이름을 홍보하지 않아 사람들에게 스포츠에서 소설적인 재미를 느끼도록 했습니당.
지금까지도 싸이클은 스포츠가 먼저 생기고 나중에 스포츠 저널리즘이 생긴 것이 아니라, "서사적 스포츠저널리즘"이라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 작가들이 일부러 만든 유일한 스포츠라고 합니당.
그들의 펜 밑에서 싸이클은 항상 스포츠 이상의 상징적 관계를 가지게 되지요. 브루쥬아 가문에서 태어나서 놀면서 1등을 놓치지 않던 자끄 앙께띠와, 가난한 집안에서 헝그리 정신으로 싸이클을 했지만 늘 그 밑에 2등을 했던 라이몽 풀리도르의 관계를 정치와 연결시켜, 카페에서 브루주아 계급의 앙께띠 지지와 노동자 계급의 풀리도르의 지지자들이 패싸움을 하도록 선동 한 후, 이 스토리를 이용해 시청자와 구독자 숫자를 늘렸습니당.
한 집안에서는 브루주아 부인이 앙께띠를 지지하는 것을 괴씸하게 여긴 노동자 출신 남편이 부인을 폭행하는 사건이 났는데 이것 역시 투르 드 프랑스를 홍보하는 스토리텔링으로 사용되었습니당.
이처럼 싸이클링은 스포츠를 스포츠에 국한시키지 않고 사람들에게 과격한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예술로 승화시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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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그랑쥬의 전략을 물려받은 프랑스의 싸이클 저널리스트들은 1964년 투르 드 프랑스 경기에서 브루주아 싸이클리스트 앙께띠와 노동자 싸이클리스트 풀리도르의 경쟁을 정치와 연관시켜 폭동에 가까운 호응도를 자아낸당. |
이렇게 마케팅은 문화에 이입시킬 때만 의미가 있고 모든 성공적인 마케팅은 선과 악의 대립이나, 인간 존재 목적같은 근본적인 철학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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