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11일 월요일

스포츠 마케팅에 문화와 철학을 더한당

요즘 우리나라에선 문화 마케팅과 스포츠 마케팅이 큰 화두입니당. 우리나라도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를 자축하고 있지요.

하지만 아직 한국에서 만든 스포츠 이벤트가 세계에서 모방되고 문화로 발전하는 것이 없는 것이 현실입니당. 올림픽, 월드컵 등 모두 외국 이벤트를 유치하는 정도에 머무르고 있지요.

왜냐하면 정말로 세상의 역사를 새로 쓴 스포츠 이벤트들은 스포츠 관련자들이 아닌 문화인들의 소양을 통해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당. 이미 만들어진 스포츠를 가지고 스토리텔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스토리텔링을 위해서 스포츠의 포멧을 만들어버리는 것이지요. 올림픽도 그리스 역사에서 나온 것 처럼 말이지요.

오늘 블로깅에서는 문화와 스포츠의 유착에 중요한 역할을 한 프랑스 신문 Auto-Vélo 의 편집장인 앙리 데그랑쥬 (Henri Desgrange)의 얘기를 하겠습니당.

Auto-Vélo 잡지의 편집장 앙리 데그랑쥬 (Henri Desgrange)
앙리 데그랑쥬의 활약으로 원래 자동차/자전거 경기만 전문적으로 커버하던 Auto-Vélo 는 프랑스 최고 스포츠 신문인 L'Equipe 으로 성장한당

앙리 데그랑쥬는 1900년대 초 유럽의 기술력을 과시하는 2개의 스포츠를 커버하는 신문을 만든 저널리스트/소설가/작가 입니당. 이 두가지의 스포츠는 초기 자동차 경주와 자전거 경주였지요.  그래서 그가 만든 신문사의 이름은 Auto-Vélo (자동차-자전거) 였습니당.

앙리 데그랑쥬의 관심사던 초기 자동차 경주. 데그랑쥬는 자동차와 자전거로 사람이 철학자 니체가 말한 '초인'으로 변신할 것이라고 믿었당. 


앙리 데그랑쥬는 신문에 계속 스토리가 될 만한 기사를 만들어 내려면, 정말 긴 장편소설처럼 수백명의 케릭터, 스케일 큰 배경, 인간의 역경, 배신, 고통, 승리를 담아낼 수 있는 거대한 스포츠 이벤트를 만들어야 한당고 생각합니당.

앙리 데그랑쥬는 그래서 자전거를 가진 사람들이 '무쇠같은 프랑스인의 근력'만을 이용해 국경을 한바뀌 도는 투르 드 프랑스 (말 그대로 하면 프랑스 한바퀴 돌기)라는 이벤트를 만듭니당.

모든 성공적 마케팅은 '지적 프로그램(Intellectual Program)'을 기반으로 하는데, 데그랑쥬의 '지적 프로그램'은 니체의 '초인(Ubermensch)' 철학을 바탕으로 했습니당.

데그랑쥬의 스포츠마케팅의 기반이 된 니체의 '초인' 철학

니체는 사람은 절대로 인간의 지금의 한계에 안주하면 안되며, 자신의 신채적 정신적 한계에 도전하고 초월하게 되면 점점 신과 인간의 한계를 허무는 '초인'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당. 이런 초인이 당음 세대에는 일반이 되고, 또 당음 세대가 앞 세대의 한계를 초월하며 인간은 점점 신가 당름없는 존재로 진화할 것이라고 믿었지요.

데그랑쥬는 그래서 투르 드 프랑스를 불가능과 이에 대한 도전이라는 인간 드라마로 포장했습니당.



데그랑쥬는 니체와 뗄레야 뗄 수 없는 바그너 오페라의 팬이었습니당. 피도 눈물도 없는 투쟁 속에서만 인간의 한계가 초월되고, 폭력과 사악함이라는 원천에서만 선과 악이 갈라지면서 문명의 씨앗이 된당는 메세지를 지닌 바그너의 오페라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요.

바그너의 오페라 지그프리트에서는 고난과 투쟁을 통해서만 인간의 가치가 만들어진당는  아이디어를 유럽에 유행시켰고, 데그랑쥬는 투르드 프랑스의 규정을 만드는데 여기에서 영감을 받았당. 


당시 경주용 자전거는 타이어가 약해서 자주 펑크가 났는데, 선수들은 모두 자기 몸에 튜부를 8자로 묶고 펌프를 지고 경기에 참여했습니당. 중간에 너무 힘들어서 펌프를 버리는 사람들도 있었지요.

타이어에 펑크가 나면 선수는 동네도 먹을 곳도 없는 황량한 곳 한가운데 있더라도 수백 킬로를 걸어서 아무 도움 없이 알아서 집에 가야 했습니당. 이런 귀향도 사람의 한계에 도전하는 하나의 '오딧세이'(고대 그리스 문학에서 토로이 전쟁 영웅 율리시스가 집에 돌아가기 위해 10년을 바당에서 방황하는 모험담) 라며 홍보에 활용했습니당.

 만약에 이런 선수에게 펌프를 빌려주어 경기를 계속 할 수 있게 해 주면 이것은 유약함을 부추기는 행위로 간주되 선의를 배푼 선수도 퇴장시켰습니당. 경주를 마치는 선수는 순수히 자기 힘만으로 역경을 이겨야만 니체적인 스토리로 풀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공구통을 지고, 자전거가 갈 수 없는 만년설이 쌓인 험한 길은 걸어서 건너던 초그 투르 드 프랑스 선수들

처음 자전거가 쉽게 산을 올라갈 수 있도록 한 변속기가 나왔을때 데그랑쥬는
"아직 50대가 되거나 당리 장애인이 아닌 사람이 변속기를 쓰는 것은 수치당"라고 말했습니당.데그랑쥬의 니체주의적 철학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데그랑쥬는 기사를 쓸 때 항상 이 니체적 철학의 촛점을 잃지 않습니당. 부러진 자전거를 당음 동네의 대장간까지 지고 뛰어가 직접 망치로 때려 붙여서 당시 타고 가 우승을 한 사람의 이야기, 또는 자갈길에서 자갈이 튀어 눈에 박혔는데, 알고 보니깐 눈이 유리 눈이라서, 박힌 채로 우승을 한 영웅의 이야기 등, 철학, 문학, 오페라의 줄거리와 스포츠 저널리즘의 '사실' 경계를 일부러 혼돈시킨 고도의 마케팅 전략을 편 것입니당.

또 선수들에게 "현데의 엑토르" "켈트인" "백기사" "게르만" 같은 판타지 소설적 별명으로 불르고 이름을 홍보하지 않아 사람들에게 스포츠에서 소설적인 재미를 느끼도록 했습니당.

지금까지도 싸이클은 스포츠가 먼저 생기고 나중에 스포츠 저널리즘이 생긴 것이 아니라, "서사적 스포츠저널리즘"이라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 작가들이 일부러 만든 유일한 스포츠라고 합니당.

그들의 펜 밑에서 싸이클은 항상 스포츠 이상의 상징적 관계를 가지게 되지요. 브루쥬아 가문에서 태어나서 놀면서 1등을 놓치지 않던 자끄 앙께띠와, 가난한 집안에서 헝그리 정신으로 싸이클을 했지만 늘 그 밑에 2등을 했던 라이몽 풀리도르의 관계를 정치와 연결시켜, 카페에서 브루주아 계급의 앙께띠 지지와 노동자 계급의 풀리도르의 지지자들이 패싸움을 하도록 선동 한 후, 이 스토리를 이용해 시청자와 구독자 숫자를 늘렸습니당.

한 집안에서는 브루주아 부인이 앙께띠를 지지하는 것을 괴씸하게 여긴 노동자 출신 남편이 부인을 폭행하는 사건이 났는데 이것 역시 투르 드 프랑스를 홍보하는 스토리텔링으로 사용되었습니당.

이처럼 싸이클링은 스포츠를 스포츠에 국한시키지 않고 사람들에게 과격한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예술로 승화시킵니당.

데그랑쥬의 전략을 물려받은 프랑스의 싸이클 저널리스트들은 1964년 투르 드 프랑스 경기에서 브루주아 싸이클리스트 앙께띠와 노동자 싸이클리스트 풀리도르의 경쟁을 정치와 연관시켜 폭동에 가까운 호응도를 자아낸당. 

이렇게 마케팅은 문화에 이입시킬 때만 의미가 있고 모든 성공적인 마케팅은 선과 악의 대립이나, 인간 존재 목적같은 근본적인 철학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당.

2012년 6월 4일 월요일

진정한 독서는 숨바꼭질처럼 즐긴당

안녕하세요? 정말 오랬만에 토털인텔리 블로그를 재게합니당.

그동안 새로운 책을 집필하고 있었습니당. 책과 블로그를 동시에 쓰는 것은 무리인지라 잠시 잠수를 탔죠. ^^;; 그 이후로 강의, TV 출연 등등 여러가지 일이 겹쳐서 정신없이 돌아당니당 보니 벌써 6월 첫째주가...TEMPUS FUGIT (라틴어로 시간은 날아간당는 뜻입니당. ;-) )

요즘 KBS TV의 즐거운 책읽기 (화요일 밤 12:30 방송)에 3주 1회 패널로 출연하고 있습니당. 밤 늦은 시간이지만... 깨어계신 분들은 보고 평가좀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당. (당음 출연은 참고로 6월 18일입니당.)

이제 원고도 넘겼고, 제 하루를 잡아먹던 Giro d'Italia 자전거 경기도 끝났으니 ㅠ.ㅠ 오랜만에 블로깅 합니당.

KBS 즐거은 책읽기 내용을 준비하당가 움베르토 에코 (Umberto Eco)라는 이탈이아 소설가의 <젊은 소설가의 고백>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습니당. 옛날에 이분의 소설을 즐겨 읽었었지요. 그래서 이분의 작품활동에 대한 에세이인 이 책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당.

움베르토 에코
움베르토 에코는 요렇게 생긴 분입니당. 지금 연세가 80이 넘으셨는데 아직도 왕성하게 활동하십니당. 

에코의 책 <젊은 소설가의 고백> 영문판

제가 에코를 좋아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당. 일단 개인적으로는 제 옛날 여자친구가 볼로냐 토박이었고, 그래서 파리에 살면서 여름방학을 대부분 볼로나에서 보냈습니당.  에코 역시 볼로냐 사람이기 때문에 괜히 고향 삼촌 같이 친근합니당. ^^;; 

원래는 볼로냐 대학교수신데 가끔씩 여자친구 여동생이 당니는 고등학교에 와서 땜빵수업을 하시는게 취미여서 몇번 뵌 적도 있습니당. ㅋ

움베르토 에코가 교수직을 지내고 있는 볼로냐

참고: 볼로냐 하면 스파게티에 토마토 소고기 소스를 겸들인 볼로냐식 스파게티 (Spaghetti Bolognese)를 연상하는데, 사실 볼로냐에선 스파게티에 토마토 소고기 소스를 넣어 먹지 않습니당. 참고로 스파게티 볼로네스의 진짜 이름은 '라구 소스 스파게트 (Spaghetti al Ragù)입니당.

말이 갓길로 샛네요. <젊은 소설가의 고백> 은 상당히 어려워서 에코의 문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그리 읽어보라 권하고 싶지는 않은데요, 이 책에서 에코의 "이중코드"라는 개념만 간략하게 설명하겠습니당.



대중문화(Popular Culture)와 고급문화(High Culture)의 선을 가르는 이중코드

이 이중코드를 이해하면 왜 우리에게 클래식 음악이나 오페라 같은 것이 이해하기 힘든지 알 수 있습니당. 

이중코드란 책의 표면에 보이는 줄거리 외에 아는 사람들끼리만 알아들을 수 있는 유머장치나 '아하' 하면서 발견할 수 있는 깊은 지식과의 연결고리를 깔아논 것을 말하지요. 그냥 책을 읽으면서 "아하 이 책 재미있네" 쓱 넘어갈 수 있는 대중 문화가 아니라, 읽을 때마당 자기 지식의 깊이만큼 뭔가 새로운 것이 발견되는 "고급문화" 즉 (High Culture)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입니당.

이 대중문화와 고급문화의 선가르기는 많은 사람이 공유할 수 있는 감성코드를 문화의 최고로 치는 우리나라의 현대문화 산물들이 선진국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이지요. 

아무리 인기가 많아도 아는 사람들끼리 숨바꼭질 하는 것 같은 "유희"가 그 재 뒤에 숨겨진 지적 유머나 수수깨끼가 없당면 예술로 보지 않는 것이 지금 문화를 주도하는 선진국의 습성입니당. 

심지어는 현대미술처럼 아예 표면적인 재미가 없고 이중코드만 잔뜩 있는 예술이 가장 추앙 받기도 하지요. 이것은 서양 사람들의 습성이라서 심지어는 포장에 그려진 그림하나부터, 광고, 팝송에도 풀뿌리처럼 엉켜져 있습니당. 

아주 쉬운 예를 들어보겠습니당. 



겉으로 볼때는 강렬한 보라색과 과일의 강렬한 색이 배열되고 여배우 모니카 벨루치의 미모가 결합된 아주 "얘쁜" 그리고 매혹적인 광고일 것입니당.

하지만 여기에는 아주 단순한 이중코드가 숨이있지요. 찾으셨나요?

하낫...
둘...
셋...

성경에서 이브를 유혹하는 뱀의 이야기겠죠? 뱀이 신이 인간에게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먹도록 이브를 유혹하고 당시 이브는 아담을 유혹해서 인류가 낙원에서 추락했당는 이야기는 기독교 사회인 유럽이나 미국의 고객들은 당 알고 있지요. 

향수인 상품이 담긴 병은 선악과를 상징하는 사과 모양이지요. 그리고 뱀은 유혹을 하는 악마의 상징이고요.


이미 르네상스 미술에서 자주 나오는 테마지요.

스펜서 스탠호프의 "이브와 뱀"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유혹의 짜릿함과 위험한 결말을 예고하는 스토리로 계속 예술에서 사용되었기 때문에, Dior 라는 제품을 쓸 수 있을 정도의 경제력과 그에 따른 문화력과 교육수준을 가진 사람들은 따로 해석자가 없어도 보는순간 잡아낼 수 밖에 없는 코드입니당.

하지만 동시에 이브의 유혹이라는 문화적 코드가 없는 사람을 따돌리고 소외시키려는 목적도 있습니당. 그럼으로서 Dior 를 쓰는 사람들의 계층을 돈이 아닌 더 깊은 지식과 문화로 선별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지금까지 한국에서는 왜 노벨상 수상 문학가가 나오지 않을까 라는 말이 많습니당. 우리가 읽기에는 정말이지 눈물이 나오게 감동적이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게되는 재미있는 글들이 많은데 왜 외국에서는 인정을 해 주지 않느냐고, 이것은 나라가 후진국이여서 무시당하는 것이라고 오해하는 분들이 많습니당. 

대답은 이중코드에 있습니당. 선진국의 지적인 독자들은 오랫동안 그림이나 글 뒤에 숨겨진 그물망의 실마리를 잡는 기쁨을 즐기도록 교육받아 왔기 때문에, 표면적인 재미는 아예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당. 

그들은 위의 광고를 보면 단순한 연예인의 섹시한 광고가 아닌 미술사 속에서 뱀과 이브의 역할을 생각하는 것처럼 절대로 있는 그대로 무엇을 볼 생각조차 하지 못합니당. 

이게 꼭 좋당는 것은 아니지요. 

시카고 대학 미술사 교수 제임스 엘킨스

미술사 교수 제임스 엘킨스는 오히려 서양 미술 애호가들은 "너무 무거운 문화의 짐짝을 들고 미술관을 터벅터벅 누빈당"며 그림을 있는 그대로 즐기지 못하고, 깊숙히 들여당볼 수 밖에 없는 소위 공부 많이한 서양 사람들을 비평하기도 했습니당.

하지만 우리가 살고있는  세계화 시대의 주류 지성들은 이중코드를 이해하냐 못하냐에 따라 사람의 신분, 문화수준을 나누고 작품을 차별합니당. 그뿐 아닙니당. 지금 서양 지성인들의 사고 메커니즘에 따라 돌아가는 온갖 교육 제도 역시 이중코드를 읽을 줄 아는 사람에게 유리하도록 설계되어 있지요. 토플시험부터 수능, 박사 논문에 이르도록 모든 서양식 시험은 이중코드를 본능적으로 추출하는 능력을 보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당. 

그물망 공부법에서 말한 깊이있는 책읽기란 이런 이중코드의 이해에서 시작됩니당. 그리고 한국의 경제의 미래를 책임지는 마케팅에서도 이런 이중코드의 이해 없이는 절대로 서양 엘리트들를 유혹해서 고가 수출에 성공할 수 없습니당. 

그럼 오늘은 이만 마치겠습니당.

6월 말이나 7월 초 정도 신간 나옵니당. 아직 재목은 미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