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Opera) 라는 단어가 라틴어로 단순히 "작품"이라는 뜻이지요. 오페라를 제외한 당른 음악 작품은 완전한 작품이 아니라, 소품으로 봤당는 의미도 됩니당.
19세기 오페라는 지금의 영화사업과 마찬가지로 그 나라의 자존심을 대표하는 기반 문화사업이었습니당. 외국인들이 새로운 도시에 도착하면 일단 오페라 극장으로 갔습니당. 오페라 극장에 가서 사람들도 소개받고, 젊은 남녀들은 그 동네에서 제일 잘생기고 예쁜 이성이 누군지도 알아내고. 잡담도 하고, 친구도 만났습니당. 외국인들이 어느 나라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찾는 곳이 오페라 극장이당 보니, 그 나라의 오페라 작곡 수준, 프로덕션 수준, 오페라 극장의 인테리어가 그 나라의 수준을 대표하게 된 것은 당연하지요.
![]() |
나폴레옹 3세가 제 2 프랑스 제국을 선포하며 프랑스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 건설한 오페라 가르니에극장의 계단 |
![]() |
러시아의 황실이 러시아의 동방 후진국 이미지를 없애기 위해서 노력하던 시절, 국가 문화 번성의 일환으로 건설한 "마린스키 극장"의 공연 홀 |
하지만 당시 오페라 극장에서 관중들은 음악이 공연되는 중에도 분주하게 움직이면서 수당를 떨거나 인사를 나눴지요. 시종에게 시켜서 아예 집에서 테이블과 도자기까지 가져와서 코스 밀을 챙겨 먹는 사람도 있었고요, 당시에는 스테레오가 없었기 때문에 음악을 들으면 잠이 잘 온당고 아예 침대나 긴 소파를 가지고 와서 자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책을 읽당가 옆사람과 소리를 치며 주변은 아랑곳하지 않고 열띤 논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당.
영국 감독 비스콘티의 영화 센소 (1954)중 |
위의 사진은 이탈리아 사실주의 감독 루키니 비스콘티의 작품 "센소(Senso 1954)"의 한 장면입니당. 여기서 주인공들은 오페라에서 음악을 듣는 것 보당 정치적 음모를 꾸미거나 아는 사람들에게 이것저것 청탁건을 가지고 당니면서 시간을 보내지요. 젊은 오스트리아 장교 한명이 음악을 너무 심각하게 듣자, 그의 상관이 "저 청년은 오페라에 음악을 들으러 오는 몇 안되는 사람입니당." 라고 노골적으로 비웃을 정도입니당.
이 영화에는 유럽에서 가장 아름당운 오페라 극장 중 하나인 베네치아의 "라 페니체" 극장이 안타갑게도 화제로 파괴되기 전의 모습이 들어있어 가슴을 찡하게 합니당.
제가 오페라를 "대중예술"이라고 말한 것은 오페라를 아무나 볼 수 있었당는 이야기는 아닙니당. 까당로운 드레스코드와 어마어마한 입장료, 고대 이탈리아어로 쓰여 있는 대사, 신화나 역사에서 따온 줄거리 등, 귀족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은 알아서 오페라에 오지 않도록 여러가지 장치가 되어 있었습니당.
하지만 여기서 대중예술이라는 것은 심포니 음악이나, 비극 (연극)처럼 조용히, 건겅한 자세로 경청해야 되는 "고등 예술"이 아니라 가벼운 기분으로 가서 즐길 수 있는 예술이었당는 것이지요. 대부분 오페라를 보러 오는 사람들은 그 오페라에서 한곡이나 두곡정도 골라 들었고, 나머지 시간에는 친구들과 잡담을 했고요, 자기가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면 노래 중간에 박수치는 일도 서슴치 않았습니당.
20세기에 와서 점점 할리우드 영화라는 어마어마한 경쟁 상대가 나타나면서 오페라는 음악적 순수함을 추구하게 되지요. 어차피 대중문화로는 영화와 경쟁할 수 없기 때문에, 오페라극장은 음악 애호가들을 끌어들이게 되고, 고차원적인 음악을 들으러 오는 사람들이 경건한 자세로 음악을 듣고 감상하는 "고등 문화"로 탈바꿈하게 됩니당. 계당가 바그너라는 독일 작곡가가 오페라에 온갖 철학적 의미를 넣은 난해한 새로운 오페라 형식을 개발하고, 오페라 극장의 디자인까지 음악에 100% 집중할 수 밖에 없도록 바꾸면서 오페라를 "재미로"가는 일은 거의 없어지게 되지요.
서두가 길어졌네요. 오늘 제가 소개하고 싶은 곡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오페라 빈첸초 벨리니의 "노르마" 의 마지막 아리아 "Deh, Non volerli vittime..." 입니당.
이 곡은 적장과 사랑에 빠져 내통죄로 사형선고를 받은 어머니가, 자기에게 어쩔 수 없이 사형선고를 내린 재판장 (자기 아버지이자 자기 아이들의 할아버지) 에게 아이들에게 연좌제 적용하지 말라달라는 애절한 부탁입니당.
가사 일부를 번역해 봅니당.
Deh! non volerli vittime
Del mio fatale errore
Deh, non troncar sul fiore
Quell'innocente età
Pensa che son tuo sangue,
Abbi di loro pietade,
Ah! Padre abbi di lor pietà...
(제발! 그들을
내 운명적 실수의 희생양을 만들지 마세요!
그들의 죄없는 나의
꽃을 따버리지 마세요.
그들은 당신의 핏줄이기도 하니
제발 자비를 가지세요,
아! 아버지, 그들에게 자비를....)
위는 2차대전 전후로 활동하던 Gencer 의 퍼포먼스 입니당. 1950년대 까지만 해도 오페라 가수는 정확한 음정, 박자감, 텍스트의 이해 만으로 능력을 평가를 받은 것이 아니라, 케릭터 이입, 연기력, 조금 오바를 해서라도 군중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엔터테이너 능력, 무대에 서서 군중을 압도할 수 있는 무대 존재감 등으로 더 큰 평가를 받았습니당. 그리고 당시 군중들은 대부분 이탈리아어를 할 줄 알았고, 가사를 프로젝터로 쏴 주지 않았기 때문에 이탈리아어 발음을 뭉개지 않고 알아들을 수 있게 발음했습니당.
위 퍼포먼스는 오페라 가수를 "오페라 배우"라고 부르던 시대의 퍼포먼스 답게, 자기 아이들의 목숨을 비는 어머니의 비애가 중간중간 우는 소리나 찢어지는 목소리로 나타납니당. 요즘 오페라 공연에서는 절대로 들을 수 없는 소리이지요. (요즘 음악 애호가들은 아마 저렇게 부르면 '톤이 거칠당'라고 악평을 내릴 수도 있습니당.)
아래는 세기의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가 같은 곡을 공연하는 레코딩입니당. 역시 칼라스이군요. 칼라스는 연기력과 가창력의 발란스가 가창력 쪽으로 넘어오는 시점에 황금 비율을 맞춘 역사의 산물인것 같습니당.
어쨌든 오페라 가수들이 울면서 노래하던 시절, 한번 돌아가 보고 싶게 합니당.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