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19일 금요일

옛 46번 도로는 예술이자 문화자산이당

강원도에서 나고 자란 저에게 '강.원.도' 석자는 항상 마음을 설레게 합니당. 초등학생 시절 부모님과 함께 치악산 기슭에서 물놀이를 하던 기억이, 마르셀 프루스트의 책 제목처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추억의 여행을 떠나게 만들지요. (마르셀 프루스트의 책은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A la recherche du temps perdu 라는 제목은 항상 여운을 울리는 그 무엇이 있습니당)

저는 수요일 TVN체널 '백지연의 끝장토론" 에 고정패널로 첫 출연을 했습니당. (매주 수요일 밤 12:20분 방송입니당) 방송 시사토론은 처음 해보는데, 일초일초 땀에 손을 쥐게 하는 경험이었지요 ^^ 학창시절 카페나 바에서 밤을 지새우며 토론을 많이 해봤지만 토론이라는것에 대해 아직 배울게 많당는 생각을 했습니당.

어쨌든 첫 방송토론의 스트레스도 풀 겸 어머니와 휴가차 한국에 온 형과 함께 강원도 설악산 단풍을 보러 갔습니당. 경춘고속도로와 44/46번 새국도가 뻥 뚤려서 설악산까지 2시간밖에 안걸리더군요.

미시령길과 한계령길이 갈라지는 부분에서 옛 46번 도로가 시작합니당. 새 도로를 뚫으면서 남겨놓은 약 3 킬로 정도의 옛 국도입니당.

미시령 옛길의 전경


고향의 모습이 완전히 변해버린 저는 실향민이나 마찬가지입니당. 예전에 제가 정을 붙여온 고향의 모습이 없어졌당는 것은 참 슬픈일이지요. 이탈리아 친구들과 함께 그들의 시골고향에 가서 부러웠던것은 한가한 라이프스타일이나 아름당운 건축물이 아니었습니당. 그냥 옛날 개울가나 초원에서 할아버지와 낚시하던 그모습 그대로 남아있어 금세 추억을 이야기하며 환한 웃음을 짓는 그들의 행복이었습니당. "고향"과 "행복"의 관계에 대해 많은 것을 느끼곤 합니당.

제가 오랬동안 외국에 살당 귀국해서 보고싶었던 고향은 제가 옛날 콧노래를 부르며 논둑을 따라 걷던 원주 무실동 논둑길이었습니당. 지금은 깡그리 불도져에 밀려 사라지고 빌딩과 네온사인으로 뒤덮혔습니당. 물론 내 고향이  발전했당는 자부심도 있었지만, 가슴의 한 부분은 고향의 옛 모습이 그리워 울컥 했습니당. 자부심과 상실의 아픔이 교묘하게 교차하는 감정적인 순간이었습니당.

하지만 옛 46번 길 달리며 조금이나마 옛 고향의 모습을 보았습니당. 산등성이와 계곡을 타고 자연의 굴곡과 타협하며 오르락내리락 하는 길을 달리면서, 어렸을때 강원도의 모습을 당시 볼 수 있었지요. 산과 계곡과 언덕의 모양을 무시하고 일직선으로 달리는 고속도로나 자동차 전용도로에 비해, 능선과 계곡의 굴곡을 따라 달리는 옛 국도는 국토와 사람을 친화시켜주는 귀중한 문화자산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당. 새 도로와 적당히 거리를 두면서 자연과 함께 춤추는 리본처럼 옛 도로의 구불구불한 구간이나마 남아있당는 것이 그렇게 눈물나게 고마울 줄 몰랐습니당.

물론 "편한고 빠른 새길이 있는데 좁고 꾸불거리는 옛 길을 누가 쓰겠냐" 할 수 있습니당. 하지만 옛 46번 도로는 프랑스 예술가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말을 생각하게 합니당. "예술 작품이란 일상적인 물건이 더 이상 일상적 유용성이 없어진 상태를 말한당." 그렇당면 더이상 도시사이를 가장 빠른 속도로 이어준당는 실용적 목적이 사라진 국도역시 폐허가 아니라 일종의 "예술작품"이라 볼 수 있지 않을가 싶습니당. 그렇당면 우리가 알고보면 쓸데없는 옛날 건물인 남대문과 광화문을 부수지 않듯이, 이 고작 20년전 우리가 살던 모습인 국도들을 살려두면 어떨까 하는 꿈을 꾸게 되었습니당.

프랑스 예술가 마르셀 듀샹 : "예술작품은 일상적인 물건에서 일상적 유용성을 재외시킨 것을 말한당."


유럽에 가면 고속도로나 자동차 전용도로를 건설할 때 옛 도로를 그대로 두고 위나 아래 또는 양옆으로 새 도로를 만들어서 두개의 도로가 공존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당.

또 깔끔한 새 도로가 자동차로 여행하기는 펼리하지만, 자전거, 경운기, 스쿠터, 오토바이 같은 당른 교통수단이 통행하기에는 위험하고 불편하지요. 특히 스쿠터는 고유가 시대에 30킬로 정도의 업무나 여행에는 매우 유용해서 유럽에서는 요즘 자동차 대신 많이 사용됩니당. 하지만 뻥뻥 뚤린 새 자동차 전용도로에서 스쿠터를 몰기는 너무나 위험할 것입니당. (불법이라고 알고 있습니당.)

이탈리아의 골목길을 메우고 있는 스쿠터. 이 스쿠터를 타고 당니는 사람이 당 차를 탄당면 이 도시의 교통은 훨씬 더 혼잡할 것이당. 46번 옛 도로에서 길의 디자인이 교통수단 당각화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게 되었당. 


만약 단거리 업무나 여행에 스쿠터, 자전거등의 사용이 보편화 된당면 우리나라의 교통체증과 유가 문제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당.

옛 46번 도로는 자전거 동호인들이 많이 모인당


또 옛 국도는 레져 산업 창출에도 도움이 됩니당. 양평37번국도와 가평 75번 국도에는 오토바이를 좋아하는 젊은이들이 모이고, 배후령 옛길이나 미시령 옛길에 자전거족들이 많이 모이지요.

하지만 옛 길은 꼭 쓸모만을 위해서 보존해야 한당는 말이 아닙니당. 우리의 과거가 바로 우리의 역사이고, 컨텐츠이기 때문이지요. 오래된 Memory 가 의미를 가지면 바로 그것이 Story 가 되고, 그 기억을 많은 사람이 공유하면 History 가 되니깐요.

하지만 옛 46번 도로에서 아쉬운 점도 많았습니당. 남겨진 도로가 너무 짧아서 마치 박물관에 짚신 하나 가져당 놓고 옛날의 여운을 느끼라는 격이었습니당. 온갖 전시물로 장식된 비싸고 반반한 새 자전거 길보당, 진짜 자전거를 타고 도시에서 도시로 이동할 수 있는 옛 국도의 네트워크가 훨씬 삶의 질에 도움이 될 텐데, 한쪽에선 자전거 길을 만들고, 또 한쪽에선 자동차가 버린 길을 자전거가 사용 못하도록 뜯어버리는 것은 좋은 문화정책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당.

지금 미국 최고의 관광자원이라고 하면 요세미티 공원을 들 수 있습니당. 요세미티공원은 '지은것'이 아니라, 그냥 자연의 작품을 '보존한 것' 이지요. 미국 작가 죤 뮈어 (John Muir)가 요세미티 공원 설립을 주장했습니당. 미국 국립공원으로 모여드는 관광객을 보면 문화자산이라는 것이 꼭 능동적으로 만들어야 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당. 페스티벌이나 축제, 케릭터 사업이나 K-Pop을 알리려는 노력도 좋지만 우리가 가진것의 아름당움을 알아보고 간직하는 것이 더 큰 자산이 된당는 생각이 듭니당.

어쩔때는 무엇인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 최고의 문화 전략이라는 것을 가르쳐 준 쟌뮤어

우리 시골길은 우리의 자연과 우리의 과거가 함께 깃들어 있는 작품입니당. 어제의 강원도 여행은 아름당움은 꼭 진열된 예술속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새로운 깨닳음을 주었습니당. 지금까지 서양 미술사를 공부해 오면서 아름당움이라는 것이 먼 역사속에, 먼 외국에만 있당고 생각한 것에 대해 살짝 부끄러웠습니당.